▲김대중 리더십 강의를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수강생들. 강의가 끝나고 자리를 식당으로 옮겨 친목 모임을 결성하기도
조종안
김대중 대통령의 자율과 책임의 리더십은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문화정책에서 잘 나타나는데, 대통령에 취임하고 1998년 봄 당시 문화관광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맨 먼저 했던 말이 "문화정책 원칙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 속에서도 각종 문화지원 정책을 집행하고 지원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고. 그러나 김 대통령은 "문화에 대한 투자는 어려운 경제사정을 이유로 중단될 수 없다. 보릿고개에도 농부가 씨앗을 아끼듯이, 문화에 대한 지속적 투자는 이 난국을 벗어나는 지혜가 될 것"임을 역설하며 계속 추진했다고 한다.
문학·음악·미술·영화·드라마 등 모든 예술작품 창작자들은 경제적으로 취약해서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원을 명목으로 창작행위에 제한을 둔다거나 정권의 입맛에 맞는 활동만을 권장하면 의욕이 떨어지게 마련인데, 영화 필름에 가위질한다거나 소재에 제한을 두면 우수한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김 전 대통령의 평소 지론에서도 잘 나타난다.
김 전 대통령은 2003년 12월15일 서울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11회 춘사 나운규영화제에서 영화인들이 주는 공로상을 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었다. 당시 주최 측은 "재임기간 중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쿼터를 지켰고, 영화진흥기금 1500억 원을 조성하는 등 한국영화계를 전폭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이 가수 서태지와 가까이 지낸 사실을 보더라도 얼마나 예술에 관심이 많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최 실장은 '국민의 정부' 시절 <쉬리>, <JSA 공동경비구역> 등의 영화가 제작되어 국민의 사랑을 받으면서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실마리가 되었다며, 한국 문화발전은 영화에서 대중음악, 뮤지컬, 드라마, 디자인 등으로 번져나갔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시작으로 아시아 전역에 '한류'가 꽃피웠고, 한편으로 정부의 지원도 힘이 되었지만, 문화인들의 자율성이 높아지자 창의성이 발휘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계의 오랜 숙원인 문화예산 비율을 정부 재정 대비 1%로 올리고도, 문화인들의 창작활동을 간섭하지 않았고, 오히려 문화인의 창작활동에 제약되는 검열제도를 없애고 바로잡은 사실을 방송국을 앵무새로 만들려고 반칙을 밥 먹듯 하는 유인촌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하다.
1998년 가을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의 오부치 게이죠 수상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를 사과받고 일본대중문화 개방을 선언한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거센 논란이 일어났는데 김 대통령은 우리 민족과 국민의 저력을 믿고 실행에 옮겼다.
김 대통령이 말하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넷으로 분류하면 첫째, 수천 년 동안 중국의 영향권에서 살아오면서도 중국화가 되지 않은 문화 창조력. 둘째, 유대민족과 같은 높은 교육열. 셋째, 몽골침략과 수나라,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끝까지 싸웠던 저항의식. 넷째는 한(恨)의 정서에서 찾았다고 한다. 한의 정서는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 정신이라고.
김 대통령의 이런 예상은 적중했고, 1998년 10월부터 1차 한류가 시작되어 오히려 예상보다 더 큰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일본 문화가 우리 문화를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는 한낱 기우에 불과했는데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한류'의 바탕에는 민주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김대중 리더십 실제'김대중 리더십' 8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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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원칙과 철학의 리더십,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둘째, 국민과 역사를 믿는 리더십, "국민과 역사 속에 영원히 살겠다.", "반 걸음만 앞서가라." 셋째, 참여와 실천의 리더십, "행동하는 양심" 넷째,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리더십, "서생적 문제인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다섯째, 대화와 연합의 리더십, "라이벌은 있지만 적은 없다.", "자기를 버리고 크게 연대하라." 여섯째, 관용과 용서의 리더십,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 일곱째, 자율과 책임의 리더십,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여덟째, 세계인으로 사는 리더십, "세계인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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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실장은 김대중 리더십 실제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째는 칭찬하고 격려하기를 좋아하는 '칭찬하는 리더십'. 둘째는 부지런하고 의견이 있고 대안을 분명히 밝히는 참모를 좋아하는 '참모관'. 셋째는 꾸중도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하는 '꾸중의 기술'이다.
일기에 '칭찬을 많이 하자'고 기록할 정도로 칭찬하기를 좋아했던 김 전 대통령은 미사여구로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 처지를 이해하고, 상대방이 한 일과 하려고 하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평가해주고 조언해주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비서관은 대통령의 귀가 되고, 눈이 되고, 때로는 머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마음이 항상 안정되어야 하고,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사무를 균형 있게 판단해야 하고, 청렴결백해야 하고 일을 성실히 해야 한다"면서 비서들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했으며, 특히 참모의 장점을 파악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김 전 대통령의 꾸중 기술은 수준급이라고 한다. 사람들 앞에서 참모를 꾸중하지 않았고, 꾸중할 일이 있으면 조용히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었으며, 꾸중하고 나면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2003년 대북송금 특검은 잘못된 일이며, 박지원, 임동원 등의 법정투쟁을 응원했으며, 감옥과 병원에 있는 참모들에게 비서들을 수시로 보내 격려했다고 한다. 진정한 리더는 군림하는 게 아니라 참모들이 고통받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해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최 실장은 이명박 정부들어 민주주의 사회의 자율과 책임의 리더십이 정반대로 벌어지고 있다며, 집회, 언론, 교육, 문화, 시민운동 등에 대한 간섭, 개입, 통제를 일삼는 현 정권을 비판하면서 민주주의 세례를 받은 국민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정부 10년의 최대 성과는 시민의 자율성과 창의성, 책임감이 높아졌다는 데 있는데, 촛불집회 시민, 누리꾼, 강직한 언론인들, 지식인과 종교인, 노동운동·환경운동·생명운동·평화운동 등을 펼치는 시민들도 지금은 일시적으로 고개 숙이고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과 정신은 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 실장은 우리가 과거 민주화 투쟁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민주주의자로서 자신의 삶을 생각한다면 암벽을 오르기 위한 '작은 틈서리'가 되고, 사회발전의 '디딤돌'이 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2009년 초 김 전 대통령이 비서관들에게 했던 말을 소개했다.
"나는 요즘 하나님에게 기도한다. 내가 건강해서 기가 막힌 시대에 한 마디라도 거들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한다. (중략) 1998년 여야 정권교체하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넘겨주면서 이제는 민주주의로 걱정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잘못 봤다. 지금 내가 죽으려야 죽을 수가 없다. 현역같이 정치활동을 할 수 없지만 지금 나는 맥시멈으로 하고 있다."김 전 대통령은 2009년 6월25일 6·15 9주년 행사위원 오찬모임에서도 "민주주의는 언젠가는 온다. 그러나 '행동하는 양심'으로 하면 빨리 오고, 외면하면 늦게 온다"는 말을 남겼는데, 국민을 바보로 만들려는 이명박 정부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생각해볼 어록으로 받아들여진다.
최 실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추구해온 자율과 책임의 리더십이 가져온 성과들을 생각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강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