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군 노동면에 있는 명봉역
서정일
방학이 기다려졌다. 도심에서 살던 나에게 외할머니 집은 낙원이었다. 토끼 잡으러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고 방죽에서 여름이면 물장구치고 겨울이면 썰매를 탔다. 호롱불 아래서 고구마를 먹으며 듣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가 귀에 쏘옥 들어오던 깊은 산골.
외할머니는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는 새벽에 일어나 30리 밖에 있는 장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사 오신 것은 김과 과자 몇 개. 다음날 새벽, 집으로 가기 위해 책가방을 챙기던 우리들 옆에서 외할머니는 김밥을 쌌다. 맨밥에 소금을 뿌리고 김을 둘둘 말아 김밥을 만들고 다시 서너 개를 헝겊으로 묶었다.
재 하나를 넘었다. 그리고 또 하나를 넘었다. 마지막 재를 넘기 전 할머니는 개울가에서 헝겊에 싼 김밥을 펼쳐놓으셨다. 할머니는 "고수레"하며 음식을 산에 던졌다. "산신 먼저 자시고 우리 손주들 집에 잘 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비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재 세 개를 넘어 도착한 곳이 '명봉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