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유성호
3월 10일 오후 3시경. 고려대학교(이하 고대) 안암캠퍼스 정경대학교 후문. 개강 2주차를 맞은 고대생들의 시선은 장문의 대자보에 고정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게시판 앞은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의 모습을 담는 취재진들도 곳곳에 보였다. 대자보의 제목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발걸음을 멈춘 학생들은 같은 학교 경영학과 3학년이었던 김예슬씨가 쓴 '자발적 퇴교서'를 한 줄 한 줄 읽어나갔다. 어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끄덕거렸고, 또 다른 학생들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찬성] "저런 사람이 있어야 사회가 변하는 것 아닐까" 대학교육의 폐단을 비판한 김예슬씨의 글에 대해 고대생들은 대체적으로 '공감한다'는 반응이었다. 가정교육학과 09학번 최지연씨는 "나 같은 경우에도 뚜렷한 목표 없이 고대라는 학벌만 보고 들어왔고, 들어와서도 딱히 무언가를 찾는 게 아니라 학점에 치여 살고 있다"면서 "저렇게 할 수 있다는 게 용기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품자원경제학과 07학번 장현수씨 역시 "나라면 저런 선택을 못했을 텐데 용기 있다"며 "저런 사람들이 있어야 사회가 변화하는 것 아닐까"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예슬씨의 글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기계과 08학번 김호진씨는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는 "(김예슬씨의 글이) 희미하게 생각했던 걸 100% 표현해준 것 같다"며 강한 공감을 표시했다. 김씨는 김예슬씨의 글이 "'빚을 내는' 88만원세대라고 하는데 힘들 정도로 빚이 있는 건 아니고, '빛을 내는' G세대라고는 하는데 정말로 빛이 나는지 모르겠고, 꿈을 꾸는데 그게 '꿈'일 뿐인 20대의 상황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면서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대] "공감은 하지만, 자퇴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고..." '맞는 말이긴 한데 올바른 방법인지는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식품자원경제학과 08학번 정경은씨는 "공감하기는 하지만 왜 저런식으로 대자보를 붙였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같은 학과 07학번 김진철씨는 "꼭 자퇴를 했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뒷바라지한 부모님들은 어떻게 하라고"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의대에서 교양수업을 들으러 왔다는 남학생 두 명은 김씨의 글을 읽으면서 말했다.
"공감은 하지만 안타깝다. 졸업이 1년 밖에 안 남았는데…."김예슬씨의 글은 학생회관 근처에도 게시됐다. 사범대 새내기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여학생은 "어제 오후 과방에 있었는데 다들 대자보 얘기를 하더라"며 김씨의 글에 대한 고대생들의 높은 관심을 전했다.
대자보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본인이(김예슬씨) 고민을 많이 했겠지만 저렇게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고 힘들게 공부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한다는 게 안타깝다"면서 "이상만 바라보는 게 삶인가. 살려면 이상을 포기해야 할 때도 많고, 현실이랑 타협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예슬씨의 글에 대한 '찬반논쟁'은 인터넷에서도 뜨겁다. 고대 커뮤니티인 '고파스'에는 김씨의 글이 올라온 9일 오후 이후로 응원과 비난의 글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김씨는 '고대 자퇴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대자보 옆에 '지지의 글'도 함께 붙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