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한 노동자가 지금까지 회사로 부터 받은 협박성 문자가 100건이 넘는다며 핸드폰을 보여줬다.
<금속노동자>김상민
"청산과 노조말살이 이번 사태의 본질" 지회 조합원들은 대체로 발레오만도의 청산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 안석태(가명, 47) 조합원은 "외국자본인 발레오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각종 세금혜택은 작년 말까지였다"며 "그동안 좋은 조건에서 막대한 이윤을 빼가다 혜택이 줄어드니까 손 털고 나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발레오는 1999년 만도기계 경주공장을 인수한 후 조세특례법에 의해 매년 법인세 및 각종 세제혜택으로 18억에서 20억 정도의 이득을 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지부 신시연 수석부지부장도 "발레오가 단물만 빨아먹고 튄다는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 노동조합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라며 "아웃소싱 문제는 회사가 치밀하게 준비한 기획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설사 회사를 청산하지 않더라도 이를 구실로 노동조합을 최대한 압박할 수 있으니 발레오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셈.
지회 조합원들은 회사 청산까지 염두에 둔 투쟁이 단사 차원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최성준 조합원은 "금속노조로 뭉쳐 싸우지 않는다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라며 관심과 지지를 호소했다.
이번 경주지부 연대 총파업과 금속노조 집중투쟁에 대한 기대도 컸다. 정연재 지회장은 "어제 총파업 결의대회를 통해 조합원들이 많은 힘을 받아 승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차 하청업체들이 밀집한 경주지역 차원의 파업은 수일 만에 현대차라는 거대자본을 직접 압박할 수 있어 영향력이 적지 않다. 작년 7월 조선일보도 '노조 천국' 경주가 파업하면 현대차가 멈춰 선다는 기획기사까지 써대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발레오만도 문제에 현대차도 긴장이 때문에 발레오만도지회와 경주지부는 같은 금속노조 소속인 현대차지부에서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라고 있기도 하다. 안석태 조합원은 "직장폐쇄 이후 숙련되지 않은 관리직과 용역들이 생산한 제품은 불량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토요타 리콜 사태가 현대차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연재 지회장은 "발레오만도도 지난 시기 노동탄압이 극심한 하청업체의 투쟁을 지원한 바 있다"며 승림카본으로부터 납품받은 제품을 전수검사하는 등 하청업체 자본을 압박해 8개월 만에 노사대화를 이끌어낸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경주지부 총파업 상황실에는 사용자측의 공세적인 대응이 보고되기도 했다. 각 지회에서는 '정작 직장폐쇄 중인 곳은 물량을 납품하고 있는데, 왜 우리 회사 물량이 끊겨야 돼냐', '지금 파업하면 원청에서 납품을 다원화 시킬 것이다'라며 조합원 흔들기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사업장은 조업이 중단되면 직장폐쇄를 하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지회장을 취재하러 온 한 언론사 기자에 따르면 이날 경주지역 사용자들이 상공회의소에서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경주지부 총파업 결의대회가 있었던 8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은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부 집행부 4인과 일부 지회장들에게 출두요구서를 발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예 진압부대로 알려진 서울시경 소속 1001, 1002중대가 경주에 내려왔다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신시연 수석부지부장은 "발레오 문제를 계기로 정부까지 나서 경주지부 나아가 금속노조 자체를 아작 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부 연대파업…"산별노조 존재 이유" 전면파업 첫 날인 9일 발레오만도 사측은 직장폐쇄 이후 처음으로 지회에 대화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지부는 파업을 일시적으로 유보하고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예정된 12일 아침까지 대화 시간을 보장하되 진전이 없을 때는 이날 다시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간 셈. 이 며칠간이 자본의 대응력만 강화하는 기간이 될까, 아니면 노동조합 투쟁력을 더 공고하게 만드는 기간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