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유성호
한 고려대 학생이 쓴 '자퇴 선언' 대자보가 화제다. 신문에 인용된 글을 보니 "큰 배움 없는 '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돼 부모 앞에 죄송하다"는 것이 자퇴의 이유로 보인다.
좀 가볍게 얘기하자면, 수천만 원의 등록금과 수년의 시간에 대한 '본전 생각'이 든 것이다. 오해는 말기 바란다. '결국 돈 때문이야'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온갖 복잡한 문제들과 닿아있을 이번 사안을 조금 단순화해서 살펴보자는 뜻이다.
적자세대 고려대 김예슬 학생의 자퇴언제부턴가 대학 등록금은 매년 두 자리씩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중반쯤이 그 시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대한민국에 상륙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모든 영역을 조금씩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하던 때였다.
자유화와 개방화(세계화) 그리고 유연화라는 더 없이 세련된 지상과제들 앞에 그동안 익숙하게 여기던 모든 것들이 '변화'의 물결에 휩쓸렸다. 1996년 대부분의 대학들이 기존의 학과 체제를 허물고 '학부제'를 시작한 것도 그런 변화 가운데 하나다. 학부제와 학과 체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 제도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당시 대학 사회 안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대학 등록금이 두 자리 수로 오르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세계 100위권 대학,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대학 당국도 등록금을 무턱대고 올려대는 것이 민망했는지 서로 눈치를 보다 급기야 '담합'을 하기에 이르렀다. 몇몇 주요 대학들이 인상률을 소수점 아래 숫자까지 맞춘 것이다. 명백한 불법이었지만 정부는 침묵했다.
결국 1996년 3월에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일제히 강의실을 박차고 거리로 나섰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 김영삼 대통령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까지 겹치면서 대학생들과 정부는 날카롭게 부딪쳤고, 결국 그 과정에서 연세대 법학과 2학년이던 노수석 군이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벌써 14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 14년간 대학 등록금은 금융 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를 제외하고는 거의 예외 없이 올랐다. 그것도 아주 '무섭게' 말이다. 매년 봄이면 등록금 인상을 둘러싸고 학생들과 대학 당국 그리고 정부의 마찰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도 물론이다.
등록금 인상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대학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