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가 몽유병에 걸린 이유, 알 만하네

바깽이의 스위스·이탈리아 여행기④

등록 2010.03.11 14:02수정 2010.03.1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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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

마침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알프스 산길을 밟아 내려가는 기분은 마치 그러했다. 차창으로 볼 때는 그저 푸른 초지였는데 두 발로 걸으면서 보니 들꽃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나 여기 있다고, 아우성치듯이 말이다. 그 작은 것들이 서로 고개를 내밀며 존재를 알린다. 역시 작은 것들은 모여 있어야 아름답다.

풍경 속으로 풍덩!


융프라우요흐에서 내려오는 길은 반대편을 택했다. 라우터브루넨에서 올라왔으니 내려갈 때에는 그린델발트를 향하기로 한다. 어딘지도 모르고 서둘러 기차에서 내렸다. 알피글렌이라는 자그마한 역이었다. 더 내려가다가는 걸어보지도 못하고 종착지에 이를까봐 조바심이 났다.

올라갈 때 반해 버린 벵겐마을 부근의 길들처럼 휘돌아가는 맛은 없다. 그쪽보다 길은 훨씬 순해 보이고 가파르지도 않다. 오른쪽 뒤로는 아이거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좁고 호젓한 길은 유연하게 굽어 돌아간다. 길이 사라지는 저 아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깊은 숲 사이로 난 길이 아니기에 길은 끊어진 듯 이어지고 끊어진 듯 이어진다.

내가 가야할 길이 한눈에 들어와서 시원하고 탁 트인 느낌이다. 앞으로 옆으로 먼 풍경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문득 돌아보면 거기에도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다. 말하자면 나를 중심으로 멋진 자연이 빙 둘러서 있으니 그야말로 풍경의 바다에 풍덩 빠진 기분이다.

가끔 오두막 같은 집들이 동그마니 돌아앉아 있다. 하지만 그다지 외로워 보이지 않는 건, 좀 멀긴 하지만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낯선 여행자들을  가득 싣고 나르는 등산열차가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쳐 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산길 어디쯤에서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등을 한껏 수그린 남자가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다. 나는 굳이 그의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 큰 키를 굽히고 얼굴을 들이밀며 묻는 그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그린델발트라고 말했다. 내가 눈을 치켜떠야 할 정도로 키가 큰 그 남자는 자그마한 동양인 여자인 나를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이 길을 가르쳐준다. 


그러고 보니 스위스 사람들 키가 여간 큰 게 아니다. 스위스에서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스어 네 개의 언어를 쓰지만 독일어권이 넓게 분포되어 있는 걸로 보아 게르만인이 대부분인 듯싶다. 취리히에 도착했을 때 딸의 첫마디는 이랬다.

"거인국에 온 것 같애."


무슨 축제라도 있었는지 요란하게 차려 입은 젊은이들로 취리히 중앙역은 북적였었다. 맨살이 드러난 허벅지는 내 허리에서 왔다 갔다 하고, 노출이 심한 가슴들이 내 눈 앞에서 출렁거리며 다가왔다 사라지곤 했다. 우연히 통유리를 통해 게르만 여성과 내가 나란히 서 있는 걸 목격하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늘씬한 금발의 미녀 옆에 난쟁이 똥자루, 땅꼬마, 콘크리트 바닥의 껌 딱지가 따로 없었다. 과연 저 사람들에게, 한참이나 내려다보이는 이렇게 작은 동양인들이 동등한 인간으로 느껴질까, 하는 의구심마저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스위스 사람들이 불친절하다고들 하던데 내가 경험한 바로는 불친절하다기보다는 무뚝뚝한 편이었다. 산악지형에서 살아온 그들은 서로가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소통에 서투른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은 사람이나 이웃보다 자연과의 교감에 더 익숙한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 것만 같다. 이런 자연 속에 둥지를 틀고 살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될 것만 같다. 어쩌면 인간의 언어보다는 새들의 소리나 꽃들의 속삭임에 더 귀 기울이게 될 테고, 변덕스런 인간의 감정보다는 자연의 변화무쌍함에 촉수를 세우게 될 터이다.

딸은 자라나고 나는 늙어가고

딸과 나는 사진을 찍네, 길가에 떨어진 들꽃을 줍네, 여유를 부리다 남편을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 갈래길이 어지럽게 많은 것도 아니고 제일 큰 마을이 그린델발트이니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어디선가 만나겠지, 여유만만이다. 마을 어귀쯤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그러나 남편은 보이지 않는다. 역까지 갔을라나...? 드디어 산길을 다 내려와 마을 기차역에 이르니 어디서 다들 기어 나왔는지 사람들이 북적인다. 그러나 남편은 없다.

"엄마! 여기 그린델발트 아니야!"

딸이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그룬트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상하다. 갈래길이 두세 번쯤 있었던가. 분명히 그린델발트라는 화살표를 보고 따라 내려왔는데, 저기가 바로 그린델발트 마을이야, 손가락질하면서 내려왔는데. 이 산길은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도 두렵지 않겠다고, 훤히 앞길이 다 보이니 길을 잃을 염려 따윈 없겠다고 자신했었는데.

순간 헷갈리기 시작한다. 남편이 먼저 내려갔던가 뒤따라 왔던가. 남편은 그린델발트로 맞게 간 걸까. 그린델발트까지는 그룬트에서 기차를 타고 10분, 걸어서는 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여기서 남편을 좀 더 기다려야 할까, 그린델발트로 가야 할까. 여권 잃어버리는 걸로 모자라 종내는 남편까지 잃어버릴 판이다.

한국에서는 등산을 할 때 종종 따로 떨어져서 가곤 했다. 그러다 산장에서 다시 만나거나 정상에서 만나거나 별로 문제될 건 없었다, 돈 주머니만 내가 잘 챙기고 있다면.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게다가 등산열차 패스는 내가 가지고 있는데, 나 없이 남편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렇다고 나도 안심할 건 못된다. 우리의 스위스패스는 세 사람이 한 몸처럼 붙어 다녀야 하는 '세이버'였다. 어른 둘이 함께 다녀야 아이가 무료인 패스이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딸과 나는 그린델발트행 기차에 올라탔다. 티켓 검사를 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제발 남편은 그린델발트로 내려갔기를 바라면서. 돈 가방은 내가 메고 있지만, 남편도 비상금으로 스위스프랑을 좀 갖고 있으니 크게 문제될 일은 없겠지 싶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딸애는 어쩌면 티켓 검사를 더 이상은 안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오호라!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기차를 갈아탈 때마다 펀치를 찍어 주는데, 하산 길에서는 어디서나 자유롭게 내려 갈아 탈 수 있는 것이다. 융프라우 지구를 다아아몬드처럼 한 바퀴를 돌 수는 있지만 반복은 허락하지 않는다.

여권을 잃어버린 걸 알게 되었을 때 딸애는 '엄마 치매야?'하며 놀려먹었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남편은 티켓이나 거스름돈을 줄때 꼬박꼬박 확인했다. "나 분명히 당신 준 거다." 나중에 딴소리 말라는 얘기다. 그것도 모자라 딸을 증인으로 내세운다. "잘 봐둬. 엄마 또 나중에 오리발 내밀라." 그러다 내가 뭐 찾느라 잠깐이라도 허둥댈라치면 딸은 얄밉게 톡톡 나섰다. "아까 봤어, 아빠가 엄마 준 거." 여권 한번 잃어버린 벌, 톡톡히 받는다.

이제 머리알 좀 굵어졌다고 제법 논리적으로 말대꾸하는 딸애가 종종 얄밉긴 했지만 돌아서면 피식 웃음이 나오곤 했었다. 그린델발트가 아니라 그룬트라는 것도, 더 이상 티켓 검사를 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먼저 알아차린 딸애가 대견스럽고 든든하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총기가 예전 같지 않은 나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는 건 가슴 싸하게 서러운 일이다.

그린델발트 역에 내리자마자 인파 속에서 남편을 발견했다. 늘 그렇듯이 남편은 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짐작도 못하고 느긋한 모습이다. 서로 잃어버리거나 엇갈리면 오종종거리며 찾아다니는 건 늘 우리 몫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호들갑을 떨어도, 산길을 따라 내려와 한 번에 그린델발트에 와 닿은 남편은 먼 산 보듯 '그냥 그런가 부다' 하는 표정이다. 내가 여권을 잃어 버렸을 때도 '그냥 그런가부다',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으니 나도 '그냥 그런가부다' 하기로 한다.

인터라켄 오스트까지 내려가 경찰서에 여권 분실 신고를 하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편해진다. 산행 내내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우리는 라우터브루넨 숙소로 돌아왔다.

어둠이 내린 후에도 알프스 잔상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비록 험하고 깊은 맛나는 산행 길은 아니었지만, 부드러운 산등성이가 아기자기하고 끝 모르게 펼쳐진 푸름이 정말 장관이었다. 바닷가에서 살던 사람이 도시로 나가면 바다 내음을 그리워하듯, 아마도 이곳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면 초록에 대한 그리움으로 향수에 젖을 게 뻔하다.

왜 동화 <알프스의 소녀>에서 클라라의 집에서 하이디가 밤마다 몽유병에 시달렸는지 알 것 같다. 융단처럼 깔린 푸른 초지를 누비고 다니던 기억 때문에 밤마다 하이디는 몸부림쳤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하이디처럼, 서울로 돌아가면 알프스의 푸른 기억 때문에 한동안 잠을 설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2009년 8월, 2주 동안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9년 8월, 2주 동안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습니다.
#스위스 #베르너오버란트 #융프라우 #알프스 #알프스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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