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부터 비와 눈이 온다 해서 그런지 날은 잔뜩 흐렸습니다. 그렇다고 어린 고추모종을 옮겨심는 밭일을 멈출 수 없어 아버지는 일찌감치 자전거를 타고 아랫밭으로 내려가셨습니다. 뒤따라 밭에 나갈 생각인데, 지난 일요일과 월요일 부모님과 함께 일을 하다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의 비좁은 통로에서 고추모를 옮겨심을 때 깔고 앉은 검은 물체였는데, 검은 비닐봉지를 벗겨보니 다 쓴 간장통이었습니다. 허리 보호대까지 차고 밭에 나온 어머니는 "밭에서 쓰려고 플라스틱 의자를 사왔지만 이것만 못하다"며 손수 만든 훌륭한 의자를 자랑하셨습니다.
30년 넘게 논밭에서 쪼그려 앉아 일해 허리도 다리도 성한 곳 없는 농사꾼 아내의 간장통은 그 어떤 현자의 가르침보다 지혜로워 보였습니다. 옛 속담에 '농부는 두더지다'는 말이 있습니다. 농부는 땅을 파서 먹고 산다는 말인데, 농부만큼 생명으로 가득한 땅을 땀흘려 일구며 몸소 정직한 지혜와 지식을 쌓고 이를 대가없이 후대에게 물려준 이들도 없을 듯 합니다. 그런 농부들을 세상은 늘 푸대접해 왔지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3.09 12:31 | ⓒ 2010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