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희 흥덕고 교장.
임정훈
인터뷰를 하기 위해 안내를 받은 교장실에는 개교와 취임을 축하하는 화분 수십 여 개가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학교 건물 본관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왔다며 명찰을 목에 건 이범희(49) 교장이 명함을 내밀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멋을 부려 쓴 것 같은 글씨체의 이름 옆에 늘어서 있는 문장은 그러했다.
이범희 교장은 지난해까지 용인의 한 고교에서 교사로 지내다가 교장공모제를 통해 올해 임기 4년의 흥덕고 교장으로 부임했다. 그 동안 꿈꾸어 오던 새로운 공교육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가 말하는 공교육의 새로운 시도를 들어보자.
- 신입생들은 주로 어떤 아이들인가? "용인이 비평준 지역이라 학교가 생긴 순서대로(학생·학부모들이) 선호한다. 우리 학교는 비선호라고 보면 된다. 자기 존중감이 낮은 아이들이 지원했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가 안다. 스스로가 자기를 비하하거나 자기 확신이나 신뢰감이 떨어진다.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색다른 데 기대도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고민할 것이다. 탐색 중이라고 본다."
- 학교 경영 기본 방향을 보니 '참여와 소통을 통한 희망과 신뢰의 배움 공동체'다. 학생들의 참여와 소통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교사가 결정하고 학생은 수동적으로 따르는 생활 지도는 한계가 있다. 아이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주체가 되도록 할 것이다. 오늘 한 학생 총회도 중요한 수단이다. 그동안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더욱이 아이들은 전체 안에 포함돼 있으면 자신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 작은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아이들이 드러나도록 할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1 : 1로 만날 수 있도록 해서 아이들이 존중 받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
- 학부모와 소통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어제 한 학부모가 학교 홈피에 두발 문제 관련해 글을 올렸다. 내가 직접 댓글을 달았다. 자신을 드러내고 질문을 올려준 게 고맙고 그런 관계를 통해 신뢰 쌓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학부모와 만나는 기회를 넓힐 것이다. '학교신문'과 '학부모통신' 등을 만들어서 학교 정보를 소수의 학부모들이 가지는 게 아니라 모든 학부모와 지역 사회가 공유하도록 할 생각이다."
- '인권 주간 설정', '어떠한 경우에도 체벌 금지' 등의 내용도 있던데?"설득하고 호소해서 아이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생활지도 요체다. 오늘 학생총회가 첫 시작이다."
- '혁신학교'라는 이름의 부담감도 있을 것 같은데?"(학부모를 탓하는 게 아니라) 교육 여건 현실이 아이들을 명문대 가도록 하는 것이 학교의 중요한 목표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학습 노동량과 교육의 질이 비례한다고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 벌써부터 우열반·심화반 편성을 요구한 학부모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학부모를 탓할 상황이 아니고 책임 지울 수도 없다. 학부모와 함께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 학부모 연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만나고 이야기 할 것이다."
- 교사들이 많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필요한 부분은 교사들도 설득할 생각이다. 이 곳에서 지금껏 교사로서 잃고 산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교사들한테 권한을 주고 결정하도록 유도하겠다. 나와 함께 근무했다는 것이 교직생활 가운데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꿈이다."
- '교훈'이 없던데?"그렇다. 계몽적이라고 할까, 그런 교훈이 굳이 필요할까 싶다. '참여와 소통을 통한 희망과 신뢰의 배움공동체'라는 기본방향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교훈뿐만 아니라 현재로서는 교가도 따로 만들 생각 없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같이 부르는 게 훨씬 낫다. 혹 나중에 생각 있는 분이 아이들과 함께 부를 의미 있는 노래를 만들어 준다면 고려해 보겠다."
- 어떤 기대와 희망을 꿈꾸나?"아이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한 두 번 상처 받았겠나? 돌봄과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주체 의식 가지고 당당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교사들의 노력과 헌신은 물론 지역의 전문과들과 네트워킹도 필요하다."
- 아이들이 잘 적응할 것이라 생각하나?"교사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주 1회는 아이들을 조기 귀가 시키고 선생님들은 토론과 연수를 할 계획이다. 아이들은 이미 어제보다 훨씬 달라졌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걸 해야 학교 생활이 신명난다. 그렇지 않으니 수업 시간에 잠을 잘 수밖에 없다. 내가 교사 시절 '가장 행복한 학교는 야자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학교'라는 게 아이들의 말이었다. 모든 교사가 지원하는 1인 1동아리 활동을 통해 평일 저녁 시간에는 교정 곳곳에서 동아리 활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동아리 활동비도 아이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 줄 생각이다."
- 직접 수업도 한다고 들었다."그렇다. 일단 다음 주 첫 시간 모든 학급에 들어간다. 학교 비전 등을 아이들에게 적극 호소할 생각이다. 정기적인 시간표를 짜서 수업에 들어가는 건 힘들지만 결·보강 시간이라도 꾸준히 챙길 생각이다. 벌써부터 아이들이 부르고 매달리고 한다"
-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모든 게 염려된다. 고교 과정에서 내부형 공모제 교장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데, 고등학교는 진학을 포함한 진로지도가 유의미해야 한다. 초·중학교 공모 교장보다는 훨씬 많고 다양한 요구가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의 교육시스템을 두고 '잘 하는데 약하다'는 반응과 '교육을 하자는 것이냐 말자는 것이냐'는 말들이 있을 텐데……. 이 (혁신학교) 시도는 이벤트가 아닌 공교육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고 아이디어도 주고 지적할 건 하면서 함께해 주면 좋겠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현상 하나하나에 조급해하지 말고 멀리 좀 봐 달라.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것이 바람직하다. 정말 노력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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