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머니 운동이 가계를 살찌운다

[가정경제 119] 카드를 자르고, 현금을 써야하는 까닭

등록 2010.03.08 10:40수정 2010.03.0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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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난했던 시절, 하얀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싶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부자 하면 떠올리던 모습이 배 나온 사장님이었었다. 그때는 잘 먹어서 배 나오고 살찐 모습이 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비만은 빈곤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패스트 푸드의 발달로, 싸고 양 많은 패스트 푸드는 도시 노동자 계급의 주식이 되었고, 오히려 부유층은 건강한 몸을 위하여 슬로우 푸드라 하여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는 유기농 식품을 이용한 식사를 선호한다.

신용카드 또한 사용 초창기에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은 좋은 직장에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라는 상징처럼 보였고, 거기에 골드카드나 발급조건이 까다롭다는 외국계 카드라도 꺼내면 '우와~' 감탄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회사에 들어가면 기회가 된다면 사용하지 않더라도 한번 발급 받아서 지갑에 꽂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사람들이 이걸 믿고 의지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저 이런 도구가 있고, 나도 이런 도구를 이용할 줄 아는 얼리어답터라는 인식 정도였다.

내 소비의 주인이 신용카드?

 신용카드
신용카드이민선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면서 내수 시장을 키우게 되고, 소비 지향적 사회로 변모하게 되면서 광고시장이 활기를 띠게 된다. 우수한 마케팅 인력들이 어떻게 하면 저축을 열심히 하던 국민들을 소비를 하게 만들지 연구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신용카드는 훌륭한 도구였다. 초창기 신용카드에 대한 비교적 좋은 인식에 사용에 대한 편리함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끼까지 제공하자 모두들 이런 건 당연히 사용해야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둘 지갑에 채우기 시작했다.


국가에서도 손쉽게 납세자료 투명화를 위하여 신용카드 활성화에 박차를 가한다. 세원 파악가능 비율을 나타내는 소비포착률이 1999년 15.5%에서 2008년 말 현재 65.9%로 확대되어 세수증가에 커다란 효과를 보았으며, 최근 각종 세금의 카드납부 확대로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듯 국가와 기업 모두가 합심하여 국민을 신용카드 사용의 늪으로 몰아갔다.

그 결과 신용카드 가맹점 수는 2009년 6월 말 1584만점에 이르고, 발급 매수도 2009년 6월말에는 1억27만장에 달해 1인당 4장을 보유하며 매출액은 2008년 말 279.3조원으로, 민간소비지출 중 신용카드 비중은 50.1%로 급증했다.


한 마디로 거의 모든 영업장에서 지갑에 4장의 신용카드를 가진 고객이 매출의 반 이상을 카드로 결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드 사용이 빈번하지 않은 노인층을 제외한다면 영업장에 오는 대다수의 경제활동 인구는 신용카드로 결제를 한다는 것이다.

놀이동산 자유이용권 무료, 주유 시 활인, 패밀리 레스토랑 활인, 영화 예매 시 할인 등 우리의 생활 곳곳에 퍼져있는 카드 활인 서비스들이다. 이 정도가 되면 정상가로 이용하는 고객은 바보 취급 당하기 일쑤다.

또한 카드 이용시 발생하는 거래비용과 세금의 증가는 가맹점의 가격에 반영되어 최종적으로는 소비자의 부담을 증가시키면서 카드 미사용자는 카드 사용자들 때문에 발생한 고비용 구조 프리미엄을 같이 지불해야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사회에서 신용카드 미사용자는 최대 피해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맞아 맞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용카드는 사용해야 한다는 데 강한 신념을 가지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용카드 시스템은 숫자로 계산되는 무차별 채무와 채권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 한번 참여하게 되면 채무자는 채권자의 요구에 순응해야 하며,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다. 더구나 내가 소비에 사용한 금액만큼 이 아닌 거래비용까지 덤으로 돈을 줘가면서 말이다.

아마 여러분들은 제도권 밖의 사 금융권에서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일탈적인 채권회수 방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되는 걸 들어 봤을 것이다. 신용카드 회사는 대부분 내로라하는 대기업이다. 하지만 한두 달만 연체가 되면 바로 신용관리회사로 넘어가면서 드라마에서 보던 그 방법들이 나에게도 일어나게 된다.

내가 신용불량자가 되고, 밤낮으로 불량한 전황에 시달리고,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소비지향적인 이 사회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카드 채무자는 짜여진 소비 시스템에서 계속하여 머물 수밖에 없는 블랙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카드를 자르고, 현금을 써야하는 까닭

지금부터는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내 돈 가지고 내가 큰소리 치며 사용할 수 있는 돈의 주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의 대표 카피는 "부자 되세요" 였다. 이건 바로 카드 회사에서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이 카피처럼 부자가 된 건 카드회사였지, 카드를 사용한 소비자는 절대 아니었다.

카드회사는 절대 우리는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친구도 아니고, 우리의 편도 아니며, 우리를 위해 희생하지도 않는다. LG카드사 부실을 기억하는가? 수많은 사람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지만 카드사는 국민의 세금으로 다시 살려냈다는 사실을. 이쯤 되면 우리가 신용카드와 이별하고 당당하게 경제적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최근 나는 6개월간의 조정기간을 거쳐 신용카드 사용을 마감했다. 익숙함에 의한 여러 가지 불편함과 신용카드를 당연히 요구하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의 불편함과 더딤 등에도 불구 하고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완전한 소비의 자유를 얻었다.

필요한 걸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소비로 인한 진정한 감사도 느끼고 있다. 현금으로 구매했을 때의 완전한 소유욕은 카드로 쉽게 고민 없이 살 때와는 달랐다. 무엇보다도 과소비를 할 수 없는 소비패턴이 형성되었다.

인스턴트 식품으로 우리가 손쉽게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과적을 과식을 하게 되어 비만의 문제를 일으켰듯이, 신용카드는 우리가 쉽게 소비를 할 수 있게 하면서 과소비, 불필요한 소비를 하게 만들었고 결국 많은 개인 경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건건한 몸과 깨끗한 환경을 위하여 슬로우 푸드 운동을 펼치듯, 한 번만 쓱 긋고 결제하는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거래하는 슬로우 머니 운동을 펼쳐야 우리 경제가 건강해질 것이다.

돈은 천천히 흐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을 알 수 있고, 그래야 나도 모르게 새는 곳을 막을 수 있다. 그래야 모든 돈을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가계부는 훌륭한 슬로우 머니 도구가 될 것이다. 가계부의 현금, 그리고 저금통과 여러 개의 통장, 이것이 느리지만 편안하고 정확한 인생 여정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가정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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