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의 중정당과 사당은 간결하고 단정한 맞배지붕이다.
이덕은
고개를 내려왔을 때 우리를 맞은 것은 김굉필 나무로 이름 붙여진 400년 된 은행나무였다. 겨울이라 삭막할 것으로 짐작했던 서원은 잔디와 은행 낙엽으로 을씨년스럽지 않았고 밖에서 본 서원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면서도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산자락에 위치한 서원은 땅을 평평하게 고르지 않고 경사면을 살려 지었고 수월루, 중정당, 사당을 중심축으로 해서 계단식 흙담장으로 포근히 둘러싸여있다. 기슭에 만들었기 때문에 계단과 축대는 필수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와 유사한 지형조건의 도산서원이 빈틈없이 잘 가꿔진 궁궐 같다면 도동서원은 좀 투박하면서도 은근히 정이 가는 반가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
동방5현으로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을 꼽는데 김종직과 김굉필, 정여창이 사제지간이고 조광조는 김굉필의 문하에 들었다. 이언적을 기리는 옥산서원이 1574년 사액받았고 이황을 모시는 도산서원은 1575년 사액받았다. 반면 김굉필을 모신 서원은 지금 위치가 아닌 현풍면에 1573년 쌍계서원으로 서로 비슷한 시기에 사액되었다가 1597년 왜란으로 전소되었다. 이후 현재의 위치에 중건되어 1607년 도동서원으로 사액된 것이다.
옥산서원이나 도산서원은 창건 당시 지방관청으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다 하는데, 왜란으로 전소되어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쌍계서원도 규모면에서 대단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초입의 수월루는 나중에 지어져서 중정당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을 가로막고 있다하나 수월루에 앉아서 보면 커다란 은행나무와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와 굳이 조망의 이·불리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커다랗고 화려해서 자칫 본연의 강학공간을 위축시키거나 다른 건물과 생길 수 있는 부조화를, 뒤쪽에 배치된 환주문과 중정각 지붕을 개방되어 있는 2층 누각을 통해 끌어들여 해소하고 있어 이런 식으로 누각을 가지고 있는 다른 서원들보다 오히려 덜 답답하고 개방적인 느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