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돌 앞당검은 암석 절벽을 신당으로 삼았다.
이광진
누군가가 맛있는 아이스께끼를 먹고 있으면 '나 호꼼만 주라'라고 하며 부러워하는데, '조금만 주라'라는 뜻이다. 이 뜻으로 썼다면 '혹곰이' 와 '조곰이'는 모두 '조금'이란 뜻을 두 번 써서 강조한 이름이 될 것이다.
이 '왕돌앞당'이 몰래물마을 형성과 더불어 생겨난 것인지 그보다 앞선 세종 때에 나병 환자들이 모시면서 비롯되었는지도 궁금해진다. 앞선 기사에서 살펴보았던 세종실록에 기록된 '한 여인이 '사노'인 일동이라는 사람과 재혼하여 함께 모의해 딸을 떨어뜨린 벼랑'이 이 엉물동산이라고 본다면, 또한 나병 환자들의 계급이 노비일 거라고 가정한다면 이 신당은 당시의 구슬픈 영혼들을 달래는 구실을 했을 것이다.
이래 저래 많은 궁금함을 뒤로 미루고 언덕을 도로 오른다. 차들이 빨리도 달리는 도로를 겨우 가로질러 뭍 쪽으로 재빨리 뛴다. 몰래물 방사탑이 있다고 알리는 표석 너머로 방사탑 두 기가 보인다. 그야말로 돌들의 향연이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건너갈 수 없고 좀더 걸어가 샛길에서 빙 둘러 가야 한다. 이 방사탑에 관해서는 전에 기사로 올린 적이 있으니 생략하고, 계속 걷는다.
4전 5기 끝에 찾은 '몰래물 방사탑'이내 제3사수교라는 다리를 만난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표석이 지난 연재기사에 나온 '기건 목사의 구질막터'이다. 도로를 또 가로질러 바다쪽 길을 따라 유유히 노니는 갈매기떼를 보며 걷는다. 그리 길지 않은 내리막의 끝에 넓은 접안시설과 작은 포구가 함께 앉아 있다. 허연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이 시설은 유람선 선착장으로 쓰이고 있다. 포구는 흘캐포구, 또는 신사수포구.
물이 빠진 포구에는 정박한 배들이 15도쯤 기울어져 있다. 한 쪽에선 큰 배 밑동 옹기종기 모여 수리 작업이 한창이다. 기다란 유선형의 나무를 배에다 붙이고 있다. 물어보니 속력을 더 낼 수 있는 효과를 얻는다고 한다.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일을 맡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