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나비족은 지구인들과 달리, 이 나무들을 통해 과거와 생태계 전부를 연결하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20세기 폭스사
아바타를 보면서 우리가 깊은 감동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현재의 우리가 그러한 네트워크와 단절된 채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에서 "과거의 파괴, 보다 정확히 말해서 한 사람의 당대 경험을 이전 세대들의 경험과 연결시키는 사회적 메커니즘의 파괴는 20세기 말의 가장 특징적이고 가장 섬뜩한 현상들 중 하나이다. 금세기 말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은, 그들이 사는 시대의 공적인 과거와 어떠한 유기적 관계도 가지지 않는 일종의 영구적인 현재 속에서 성장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단절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었다.
홉스봄의 지적처럼 과거와의 단절은 나비족들이 소리나무와의 접속을 통해 공유했던 이전 세대들의 경험과 실천을 활용할 수 없게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눈앞의 단기적인 이익만을 좇아 미래를 향한 장기지속적인 실천에 인색한 것 또한 오직 '영구적인 현재'를 살게 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소리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홈트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과거의 기록으로 구성된 역사 속에 있다. 하지만 나비족들이 소리나무의 음성들과 접속할 수 있는 손쉬운 연결방법과 적절한 환경을 가진 것과는 달리, 우리는 역사의 기록 속에 담겨 있는 과거의 다양한 경험들과 접속하기 위해서 역사적 평가라는 다소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국망에 대한 인식과 과거와의 단절2010년은 '한일병합'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사건이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100이라는 숫자가 지닌 의미로 인해, 한일병합과 관련된 많은 기억들은 다시 소환되어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910년에 조선의 멸망을 직접 경험했던 당시 사람들은 그 사건을 '국망(國亡, 나라의 멸망)' 또는 '국치(國恥, 나라의 치욕)'라고 불렀다. '국망'과 '국치'라는 명칭 속에는 500년 이상 지속되었던 조선이라는 나라의 멸망을 목격하는 위기감과 치욕감이 잘 담겨있다. 마치 나비족들이 '언옵타늄'을 얻고자 하는 지구인들의 탐욕으로 인해 자신들의 홈트리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목 놓아 통곡했던 것처럼.
영화 <아바타>와는 달리, 만약 나비족들이 지구인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홈트리를 중심으로 자연과 시간을 연결해 온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모두 버리고, 지구인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수용했다면 어떠했을까? 자연과 생명, 그리고 시간을 연결하는 나비족의 거대한 네트워크는 '악습(惡習, 잘못된 관습)'과 '구습(舊習, 옛 관습)'이라는 과거의 유물로 취급되고, 지구인이 추구하는 경제적 성장과 이윤 추구, 그리고 힘의 논리가 새로운 문명의 가치척도로 자리잡으면서 나비족들의 삶을 전면적으로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위의 나비족에 대한 가정이 우리 역사에서 실제로 발생했다. 국망 전후부터 외세는 우리의 전통과 유산을 악습과 구습으로 규정지었고, 나라가 멸망하면서 우리 스스로도 이 사건을 악습과 구습으로 인한 무능과 부패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였다.
국망은 우리가 버려서는 안 될 자연·인간·과거에 대한 네트워크마저도 야만과 무능의 이름으로 평가하게 했고, 이러한 인식은 새로운 문명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의존과 맹목적인 수용으로 이어졌다. 조선의 멸망을 바라보는 역사적 평가는 과거와의 네트워크를 끊고, 새로운 문명의 네트워크에만 접속하게 하는 편향적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국망에 대한 재평가와 과거 네트워크의 성찰적 복원최근, 서구문명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진행되면서, 동아시아 3국(한·중·일)의 근대이행에 대해서도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전까지는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을 근대의 '우등생'으로, 청일전쟁에서 패배하고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한 중국을 '절반 열등생'으로, 그리고 끝내 나라를 빼앗긴 한국을 '열등생'으로 평가하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가 사후의 결과만을 중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요인 가운데 특별히 몇 가지 요소만을 강조해서 일반화한 편협한 시각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일본의 성공담이 결국 2차 대전의 패배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성공과 실패라는 단선적인 기준이 가진 한계는 여실히 드러나고 만다. 조선 역시, 멸망했기 때문에 실패한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조선(대한제국)의 멸망에 대한 재평가가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특히 2004년에 있었던 '고종시대 논쟁(대한제국 논쟁)'은 고종과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역사학자들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자들까지 참여한 대규모의 논쟁으로 발전했으며, 그 결과는 <고종황제 역사청문회>라는 책으로 정리되어 출간되었다.
이전까지 조선의 멸망을 대한제국의 무능과 부패 속에서 설명해 왔던 단선적인 평가를 비판하고, 대한제국 정부가 봉건제의 모순과 외세의 압박이라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주체적으로 대응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실패에 이르렀는지를 밝히고자 하는 노력이 이 속에 잘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