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세상, '청년 한컴'의 생존법

[현장] '한컴 오피스 2010' 발표회... 호환성 앞세워 MS와 '맞장'

등록 2010.03.04 13:30수정 2010.03.0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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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컴 오피스 2010 신제품 발표회 행사장을 가득 채운 참가자들.
3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컴 오피스 2010 신제품 발표회 행사장을 가득 채운 참가자들.김시연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소프트웨어도 예외는 아니다. '윈도'가 독점한 PC 운영체제(OS)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 PC용 오피스 프로그램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아래 MS)가 82%를 장악하고 있다. 그나마 한글과컴퓨터(아래 한컴) 오피스가 행정기관 납품에 힘입어 18%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장 수요가 많은 일반 기업이나 개인 사용자들에겐 외면당해왔다. 

과연 한컴은 MS 오피스에 맞서 국산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을까? 3일 일반에 처음 선보인 '한컴 오피스 2010' 발표회가 관심을 끈 것도 이 때문이다.

"'넥셀'과 '슬라이드'? 과거는 잊어 달라"

3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털호텔 그랜드볼룸의 문이 열리자 700여 좌석은 순식간에 가득 찼다. 미리 사전등록을 받고 일일이 전화로 참석을 독려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3년 만에 새로 선보이는 한컴 오피스에 대한 관심이 높은 탓이었다.

이날 신제품 발표회에서는 독특하게 한컴 직원이 아닌 기자, 파워블로거 등 '외부 전문가'들이 제품 소개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MS 워드에 맞선 국산 워드프로세서의 자존심 '아래아한글2010'(아래 '한글')은 파워블로거인 조현경 엠브레인 마케팅본부장, MS 엑셀과 같은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인 '아래아한셀2010'(아래 '한셀')은 '우공이산'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희욱 블로터닷넷 기자,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인 '아래아한쇼2010'(아래 '한쇼')은 이상훈 쿨디자인 대표가 각각 소개를 맡았다.

1990년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출발한 한컴의 '오피스' 도전은 2004년 '한컴 오피스 2005'와 '오피스 2007'에 이어 세 번째. 하지만 정작 오피스 프로그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 '넥셀'과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 '슬라이드'(한쇼)는 지금까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컴을 대신한 외부 전문가들도 인정할 정도다. 이희욱 기자는 "처음 한컴에서 넥셀('한셀'로 변경) 소개 요청을 받고 한숨부터 나왔다"면서 "예전에 넥셀을 써봤는데 정말 많이 부족한 소프트웨어였고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프레젠테이션 컨설턴트인 이상훈 대표 역시 "한컴 슬라이드('한쇼'로 변경)를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은 이건 제품도 아니다, 하고 바로 버렸고 두 번째 버전도 버렸다"고 이전 버전에 대한 실망감을 내뱉었다.

 3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컴 오피스 2010' 신제품 발표회에서 이희욱 블로터닷넷 기자가 '한셀2010'을 소개하고 있다.
3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컴 오피스 2010' 신제품 발표회에서 이희욱 블로터닷넷 기자가 '한셀2010'을 소개하고 있다.김시연

'아래아한글' 이미지 벗고 '오피스 전문 기업' 승부수


물론 새롭게 선보인 '한셀'과 '한쇼'의 긍정적 변화를 강조하려는 의도이긴 했지만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한컴 오피스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이번에 20년간 지켜온 회사 로고와 함께 프로그램 이름들까지 과감히 바꾼 것도 이런 나쁜 기억을 떨치고 '오피스 전문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한컴의 의지인 셈이다.

지난해 9월 취임한 김영익 한컴 대표는 이날 환영사에서 "취임한 뒤 '오피스'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듯 한컴을 오피스 전문 기업으로 만들어 오피스 선택의 기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아래아한글'로 대변되는 한컴의 이미지를 벗겠다는 의미다.

한컴 마케팅 총괄 매니저인 강홍구 이사 역시 "그동안 밖에서 한컴 오피스를 두고 '가격밖에 할 얘기가 없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번엔 쓸 만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은 것"이라고 이전 제품과 차별성을 강조했다.

이번에 한컴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MS 오피스 프로그램들과 호환성이다. MS 워드나 엑셀 문서도 한글과 한셀에서 깨짐 현상 없이 불러오게 하고, 반대로 한글과 한셀 문서를 워드나 엑셀에서 원본 그대로 읽을 수 있게 저장하는 기능을 강화했다. UX(사용자 경험)이 중시되는 메뉴 배치나 사용자 환경 역시 MS 오피스와 비슷하게 만들어 프로그램 변화에 따른 혼선도 최소화하려 했다. 결국 MS 오피스 사용자가 절대 다수인 현실을 받아들이고 사실상 프로그램 간 경계를 허문 뒤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기존 MS 고객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가정용 '한컴오피스 2010 홈에디션' 패키지는 3만6000원(부가세 별도), 기업용 '한컴오피스 2010 처음사용자용' 패키지는 30만5000원으로, 'MS 오피스 2010'(99~499달러, 한화 11만~57만 원)의 1/3~1/2 수준이다.

호환성 강화해 MS 오피스 고객 흡수 전략

이날 발표회를 참관한 중소기업 대표인 박영택(에스앤씨)씨는 "기업에서는 한컴 오피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MS 오피스 환경에 익숙하기 때문에 호환성이 생명"이라면서 "블로그 연동이나 MS 워드 변환 시 문서가 깨지는 현상 등이 해소된다면 기업 시장에선 이전보다 경쟁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셀'과 '한쇼'를 직접 써본 외부 전문가들의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이희욱 기자는 "한셀은 기존 6만5천 행에서 105만 행 데이터베이스까지 처리할 정도로 몸집이 커졌고 엑셀2010 파일도 흐트러짐 없이 불러올 수 있을 정도로 호환성이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이상훈 대표 역시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은 사용 편의성뿐 아니라 디자인과 애니메이션, 화면전환 기능이 중요한데 한쇼의 화면 전환은 상당히 화려하고 역동적"이라며 "이젠 한쇼로 실제 프레젠테이션을 할 정도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평가했다. 실제 이날 선보인 프레젠테이션도 모두 '한쇼'로 만들었다.

모바일 시대에도 한컴 위상 지켜나가려면

 3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컴 오피스 2010' 신제품 발표회 행사장 앞에서 한 참가자가 직접 프로그램을 사용해 보고 있다.
3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컴 오피스 2010' 신제품 발표회 행사장 앞에서 한 참가자가 직접 프로그램을 사용해 보고 있다. 김시연
지금 한컴의 경쟁자는 MS만이 아니다. 텍스트 중심의 오피스 프로그램이 인터넷 환경에서 사진, 동영상 등 그래픽 중심으로 변한 것처럼, 디지털기기 패러다임이 PC에서 모바일기기로 넘어가며 '모바일 오피스'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컴 역시 기존 웹 오피스 서비스인 '씽크프리'를 스마트폰용 모바일 오피스로 확대하고 있다.

이날 행사장에도 아이폰, 옴니아2 등 '스마트폰용 한글 뷰어' 프로그램 개발 계획을 묻는 참가자들이 적지 않았다. 현재 한컴에선 아이폰에 첨부된 '한글' 파일을 읽을 수 있는 뷰어 애플리케이션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언제 선보일지는 미지수다.

한컴은 '오피스 2010' 개발을 위해 3년 반 동안 연인원 200여 명을 투입했고 지난해 12월부터 수개월에 걸쳐 오픈 베타 테스트를 거쳤다. 경영진에 대한 연이은 검찰 수사로 어수선한 가운데 한컴으로선 거의 전력을 쏟은 셈이다. 그 와중에 스마트폰 열풍이 갑자기 불면서 한컴으로선 기존 고객의 중요한 '니즈'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한컴에서 고객서비스를 담당하는 박상희 팀장은 "한컴은 이제 어려운 10대 시기를 지나 20살 성년이 됐다"면서 "20년 전부터 한컴에 쏟았던 관심과 애정을 끝까지 보여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모바일 시대엔 2~3년씩 여유를 갖고 기다려줄 고객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피스 전문 기업' 위상에 걸맞게 고객의 작은 욕구에도 발빠르게 대응하는 '청년 한컴'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한글과컴퓨터 #한컴 오피스 2010 #마이크로소프트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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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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