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합시다

3년째 회사와 법정 다툼 중인 대한관광리무진 해고자들

등록 2010.03.03 18:06수정 2010.03.0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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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하자"는 말은 보통 법대로 해도 거리낄 것 없는 당당한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법대로 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어찌나 능력이 좋은지 법까지 제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대한관광리무진 노동자들은 이 뻔뻔한 사람들을 상대로 1년 8개월째 맞서고 있다.

 

취재 약속을 잡기 위해 전국운수노조 대한관광리무진지회의 지회장 송주석씨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도 아니나 다를까 그이는 법정에 있었다. 행정 소송에 계류된 자잘한(?) 것들은 빼고 따져도, 회사에서 노조에 건 소송이 공금횡령, 명예훼손, 업무방해, 체불임금부존재 등 네 건, 노조에서는 건 것이 체불임금 소송과 해고무효 소송의 두 건이다. 해고자라고 해서 가만히 농성장만 지키고 있을 것 같지만 그 많은 재판들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2월 5일 오후, 전북도청 앞에 있는 농성장에서 대한관광리무진지회의 해고 노동자들을 만났다. 화물연대 전북지부에서 지원한 미니버스를 개조해 만든 좁은 농성장에는 이불과 라면, 김치, 주전자, 펼침막에 확성기와 마이크까지 농성장의 하루를 짐작하게 해 주는 물건들이 빼곡 들어 있었다. 전주에서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를 운전하던 이들이 일터에서 쫓겨나서 싸움을 시작한 것은 2008년 7월. 회사에서는 공금 횡령이니 업무 방해니 하는 이유를 들어 이들을 해고했지만, 부지회장 김육한 씨가 생각하는 해고 이유는 따로 있었다.

 

"두 번이나 노조를 만들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다 깨 버렸어요. 그런데 코스닥에 상장이 되니 어쩌니 핑계를 대서 3년이나 임금을 동결시킨 마당에, 회사가 부정 운행을 하다가 적발돼서 노선이 확 줄어들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사장이 자기 눈에 '예쁜 놈'들한테만 일을 준 거죠."

 

기본급 한 푼 없이 운행 횟수에 따라 일당을 받는 이른바 '탕 뛰기'로 일하는 기사들에게 일을 주지 않는 것은 그만큼 임금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하루아침에 수십만 원씩 월급이 줄어든 노동자들은 2008년 3월에 노조를 만들었다. 마흔 명쯤 되는 노동자들 가운데 노사위원회 위원들만 빼고 37명이 다 가입했다는 것은 그만큼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증거다.

 

그때부터 회사는 온갖 트집을 다 잡으면서 조합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두 달 안에 노동조합을 부숴 버리겠다"고 공언한 사장은 징계로 겁을 주기도 하고 돈으로 유혹하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노동조합을 탈퇴하거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지금 남아 있는 14명의 조합원들 가운데 13명이 순서대로 해고됐다.

 

해고한 이유는 대부분 공금 횡령.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이 회사가 다른 회사와 다르게 자체적으로 쿠폰(승차권)을 발행해서 기사들에게도 그것을 팔게 했기 때문이었다. 기사들이 늘 승객들과 직접 현금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니까 회사가 보기에 그것만큼 좋은 핑계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회사는 기사들이 하루 동안 받은 티켓(승차권)들 가운데 날짜가 다른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을 빌미로 삼았다. 조합원 조정현 씨는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차에 감시 카메라가 다 달려 있어요. 회사에 그것만 판독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있어서 기사들이 여름에 유니폼 소매만 걷어도, 단추 하나만 풀어도 다 잡아 낼 정도로 감시가 철저해요. 그런데 기사들이 차 안에서 쿠폰을 다 주고받는데도 감시 카메라에 잡힌 증거는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계산을 잘못해서 500원만 덜 넣어도 다 월급에서 깠거든요. 그런데 노조가 생겼다고 공금 횡령으로 엮어서 딱 자른 거예요."

 

회사가 증거로 내세운 것은 2006년, 2007년의 쿠폰 뭉치들. 회사는 회사에서 포섭한 몇몇 기사들에게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공금을 횡령했습니다'하는 거짓 진술서를 쓰게 하고는, 조합원들에게 '너희들도 똑같이 그랬지?'하면서 해고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녹화된 감시 카메라 비디오를 모두 뒤져도 기사들이 돈을 제 주머니로 넣는 장면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29건을 적발했다고 했지만 그 가운데 대부분은 운행조차 하지 않은 날의 것이었다. 당연히 회사에서 제기한 공금횡령 소송에 대해 법원에서는 조합원들의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회사는 곧바로 항소했다.

 

그렇다면 거짓 진술서를 쓴 기사들은 어떻게 됐을까? 한 사람은, 이 회사에서 운행 중 사고로 숨진 사람만 딱 한 번 받은 적 있다는 산재 처리를 받았다고 한다. 아무리 허리가 아프다고 해도 산재는커녕 연, 월차 하루 쓰지 못하는데, 산재 처리를 받아서 3, 4개월 동안 요양을 한 것이다. 또 한 사람은 자진 퇴사하는 것으로 회사를 떠났는데 고용 보험을 타 먹다가 몇 달 뒤에 다시 와서 일을 했다고 한다.

 

회사는 그 뒤에도 명예 훼손과 업무 방해 등으로 조합원들을 고소했다. 누가 보더라도 증거가 부족하고 회사가 이길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회사는 어떻게든 '꺼리'를 찾아내서 하나라도 소송을 더 걸고, 패소하면 고등법원, 대법원에 또 항소하면서 '법대로'를 외치고 있다. 소송 한 건이 끝나는 데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릴 테니, 그동안 골치 아픈 법리 싸움에 지친 조합원들이 제풀에 항복하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아니면 정말 법대로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아니 법도 제멋대로 이리저리 갖다 붙여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사장이 얼마나 빽(?)이 좋아서 그렇게 뻔뻔한지 물어봤더니 김육한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도청도 문제가 많아요. 원래는 '한정면허'라고 3년마다 갱신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도청에서 유일하게 영구면허를 내준 놈의 회사가 여기예요. 공항 손님 말고 일반 손님도 태웠으니까 위법이지, 노선도 위반했지, 유가 보조금도 속였지, 그런데 이놈의 회사는 도청에서 행정 지시를 내려도 안 듣고 되려 행정 소송을 걸어 버려요. 그렇게 지금 걸려 있는 것만 여덟 건이에요."

 

회사에 면허를 내준 담당 공무원은 명예 퇴직을 하고 지금 이 회사의 사외 이사로 있다는, 조합원 김연창씨의 추가 설명을 들으니 느낌이 딱 왔다. 조합원들 말대로 삼성씩이나 되는 것도 아니고 지방의 조그만 버스 회사밖에(?) 안 되는 대한관광리무진 사장이 믿고 있는 것은 사실 '법대로'가 아니라 '돈대로'나 '빽대로'는 아닐까? 어차피 법정 싸움은 오래오래 버틸 돈이 있고, 비싼 변호사를 쓸 돈이 있는 쪽이 유리한 거니까. 게다가 지금 숨어서 활약하며 앞으로 이 회사의 사외 이사가 될 사람들이 어디 어디에 또 있다면 회사야 얼마든지 법대로 해 볼 만한 것 아니겠나.

 

한번은 싸움이 길어지는 것을 보다 못한 도청과 경찰이 중재를 해서 회사와 조합원들 사이에 대화 자리를 마련한 적도 있다. 하지만 얼마든지 법대로 해 볼 만하다고 낙관하는 회사가 그런 번거로운 자리를 반가워할 리가 있나. 조합원들은 1년 반 만에 사장 얼굴 한번 볼까 기다렸지만, 회사는 한마디 사전 연락도 없이 펑크(?)를 내 버렸다.

 

하지만 회사가 그런 낙관을 오래 가지기에는 법원이 너무 융통성이 없었거나, 회사의 총알(?)이 부족했나 보다. 2월 11일, 김연창씨의 전화가 왔다. 그날 있었던 공금횡령 소송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역시 조합원들의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다. 공금 횡령이 무죄라면 공금 횡령을 핑계로 조합원들을 해고한 것 역시 명분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 앞선 2월 10일에도, 회사에서 조합원들에게 줄 체불 임금이 없다고 제기한 체불임금부존재 소송이 기각됐다고 했다.


설을 앞두고 명절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는 김연창씨의 들뜬 목소리를 들으니, 차량 농성장에 걸려 있던 펼침막에 쓰인 구호가 생각났다. "니가 망하든 우리가 죽든 한판 붙자!" 기나긴 한판의 싸움을 끈질기게 이어 가고 있는 대한관광리무진 노동자들이 멋진 한판승을 거뒀다는 전화를 또 받게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작은책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3.03 18:06ⓒ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월간 작은책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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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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