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KBS사장이 2008년 8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감사원의 해임요구 등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기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권우성
나에 대한 '해임 요구'를 한 감사원의 KBS 감사 결과는 2008년 8월 5일 열린 감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되었다. 감사위원회는 감사원 사무처가 짜놓은 목적과 방향, 즉 베이징 올림픽 전에 '해임 요구 의결'을 마무리짓는다는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잘 '부응'한 셈이었다.
최종 답변서 제출 하루만에 '해임' 의결
감사원 사무처가 짜놓은 정치 감사의 흔적들은 특히 의결을 위해 그렇게 서두른 행태에서 거듭 확인된다. 매주 목요일에 열리는 감사위원회가 갑작스럽게 화요일(8월 5일)로 앞당겨 개최된 것을 비롯해, KBS의 최종 답변서가 제출된 지 단 하루 뒤에 감사위원회를 열어 감사 결과를 확정지은 점 등은 정치 일정에 따라 쫓기듯 다급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면 달리 설명한 길이 없다. 하루 전날 보낸 KBS의 마지막 답변서는 제대로 검토할 시간조차 없었을 터였다.
앞에서도 증언했지만, 감사원은 감사를 끝낸 뒤 KBS에 32건의 질문서를 보냈는데, 한 질문서는 보통 10개 내지 20개 문항의 질문이 있어, 내용과 범위가 방대했다. 그랬기에 한 질문서에 대해서도 KBS의 여러 부서가 매달려 답변을 해야 했고, 이를 다시 모아 최종 정리를 하고, 경영진의 마지막 검토까지 필요했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만든 답변서를 제대로 읽어나 보았는지 의심스럽다. 특히 '해임 요구' 결정을 내린 하루 전날 보낸 답변서는 더더욱 그렇다. 4년 전의 특별감사와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4년 전 특별감사 때는 최종 답변서 제출 25일 후에 처분 시행이 있었다. 그런데 2008년의 경우 최종 답변서 제출 하루 만에 처분 시행이 있었던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감사위원들의 처참한 모습그런 면에서 볼 때, 감사원 사무처의 그런 '정치 감사'를 최종 확정지은 감사위원들의 면면은 참으로 서글프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감사위원 6명 가운데 5명이 참여 정부 시절에 임명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정연주 사장 건, 특히 해임의 가장 큰 사유로 등장한 '배임 혐의' 건은 별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건 더욱 말이 안 된다.
감사원 감사위원회는 6인의 감사위원(차관급)으로 구성되며, 감사원장이 의장이 되어 회의를 주재한다. 감사원 주요 업무에 대해 최종적인 의결권을 가진 막강한 기구다. 참여정부 시절, 그렇게 막중한 책임이 있는 자리에 올랐던 이들이 정권이 바뀌자 이명박 정권의 정치목적에 그렇게 '봉사'를 해 버렸으니.
감사위원뿐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 정부 시절에 임명된 고위 인사들이 이명박 정권의 압박에 견디어내지 못하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문제는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의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감사원장이 사표 내버렸지 않습니까? 지켜줘야 할 사람이 안 지켜주고 사표를 내버리니까 감사원에서 정연주씨를 두고 엉뚱한 감사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민주주의라는 것이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직분에서 그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번에 보니 뭐 일괄사표 내라니까 줄줄이 내버리고, 그러니까 자유를 지킬 수가 없는 것이죠. 권력기관에 있는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국민이지 않습니까? 두려움에 떨고 눈치보고 꼬리 내리고 그게 지금 행동양식이지 않습니까? 무릎 꿇지 않는 사람은 지배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쉽게 무릎을 꿇으니까 그러는 것이지요."(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8월 중순, 퇴임 후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인터넷 언론 <서프라이즈>에서 주간지 발간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주간지 발간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 기자회견 내용은 한동안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2009년 8월 10일, 창간 100호 기념으로 입수하여 전문을 공개했다. 위의 발언은 그 당시 인터뷰에서 나온 것이다).
'죄목'도 '처분'도 '경미한 경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