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선만 보는 줄 알았던 총각이...

노총각 장가 가는데 주례를 서다

등록 2010.03.02 17:07수정 2010.03.0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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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주례를 섰다. 신랑 나이는 46세 숫총각이고 신부는 30대 후반 숫처녀다. 신랑은 공부도 많이 하고 살림도 좀 있고 순진하고 성실하기가 이를 데 없고 집안도 괜찮은데 어쩌다 혼기를 놓쳐서 영 결혼이 성사되지 못해 안타까웠다. 이 남자의 약점이라면 약간 터프가이 기질이 약하다고나 할까 그런 정도이다. 착하고 얌전한데 세상은 그런 사람을 용인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근데 누가 소개했는지 몇 달 전부터 어느 여성과 교제를 나누다 드디어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하도 된다 안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청첩장 가져오기 전에는 내가 안 믿겠다고 했는데 진짜 가져왔다. 내가 속으로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긴 있구나' 했다. 짚신도 짝이 있는 법이다. 나이를 먹었으면 나이를 먹은 대로 짝이 있고, 못 배웠으면 못 배운 대로 짝이 있고, 못 생겼으면 못 생긴 대로, 돈이 없으면 돈이 없는 대로 짝이 있기 마련이다.

 

난 결혼할 때 선도 안 보고 했는데 이 사람은 내가 알기로도 선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평생 선만 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래도 결혼이 이루어진 것이다. 어떻게 만났든 결혼하게 됐으면 이젠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 들여야 한다.

 

바람을 피우는 경우도 보니까 우리가 생각할 땐 바람은 잘 생긴 사람들이 피우는 걸로 아는지 모르지만 세상에 못생긴 사람도 거기에 맞는 바람 상대가 있더라는 것이다. 이 신랑은 워낙 얌전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바람이 잘 안 나서였는지 정말 어렵게 혼사가 이루어졌다. 

 

신랑이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원로교수가 있어서 그 분이 주례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날짜가 임박해서 고민하다 날 찾아 온 것 같았다. 나보고 주례를 서 달라는 것이었다. 못 서 줄 거야 없지만 다른 분 찾아보고 항상 나는 마지막 카드로 쓰라고 한 것이 결국 쾌히 승낙하게 됐다. 다음은 주례사 전문이다. 

 

결혼은 서로 다른 남여의 개체가 하나로 결합되는 하모니의 역사입니다. 마태복음 19장6절에서 "이제는 둘이 아니요 한 몸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오늘부터 둘이 아니요 한 몸이므로 최대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래와 시멘트는 서로 다른 물질입니다. 그러나 물을 통해서 하나로 뭉쳐 주면 바위같이 견고한 새로운 물체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두 인격의 신랑과 신부지만 사랑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하나로 묶여지면 아름다운 부부가 될 것입니다.

 

서구문명을 '단추의 문명'이라고 본다면 우리나라의 문명은 '옷고름의 문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복은 단추 구멍과 단추로 옷깃을 이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의 한복은 옷고름으로 서로를 이어 줍니다. 그래서 한복에는 단추 구멍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구멍을 뚫는 희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옷고름으로 감싸주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모니를 통해 하나로 결합되어 늘 서로 감싸주면서 사랑하면서 도와주면서 사랑의 하모니를 이루는 아주 모범적인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어로 'God'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거꾸로 뒤엎어 읽으면 'dog'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총 속에 복되게 살지 못하고 뒤엎어진 삶을 산다면 그건 개차반의 삶이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꼭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사는 부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삶의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뒤엎어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가정이 되기 바랍니다.

 

늘 긍정적인 눈으로 보고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서로 존경하며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서로 높이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존경하는 남편이 나가서도 존경받습니다. 남편이 귀히 여기는 아내가 남한테도 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양가 부모님을 잘 공경하기 바랍니다.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결혼을 옷에 비유하자면 기성복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맞춤복은 자기의 몸 치수에 맞게 재고 정성들여 만들고 만드는 과정 중에 잘 되어 가는지 확인해 보고 완성 후에는 입어보고 잘못되었으면 또 고쳐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성복은 이미 완성된 옷이므로 좀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맘에 드는 부분으로 인하여 만족해하며 대개는 그냥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내 옷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결혼하는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늦게 만났습니다. 매일 사랑하며 살아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사람과 숲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봐야 멋있게 보이는 건데 이제 가까이서 보게 되니 피차 못마땅한 것들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그 자체가 허물과 약점의 연합임을 전제한 것입니다. 서로 덮어 주고 이해하고 보완하고 귀히 여기며 살기 바랍니다.

 

여기 계신 양가 부모님 일가친척과 친구들 그리고 교우 여러분! 될 수 있으면 칭찬하는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공적인 결혼생활이 될 것입니다. 흉보고 깔보고 나쁘게 말하는 것은 피해 의식 속에서 자란 악습입니다. 그런 것을 모두 벗어 버리고 예쁘게 사는 새 부부가 되기 바랍니다.

 

특별히 두 사람은 목회자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목회란 것이 잘 풀릴 수도 있지만 의외로 더딜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감사하며 잘 극복하면 불원간에 하나님이 큰 복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최근 예식장 풍경은 대개 사람들이 축의금 접수하고 식당에 가서 밥 먹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요번에 보니까 하객들이 양쪽에 꽉 채워져 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법적 부부를 만들어내는 시간이었다.

 

교회 식으로 하면 대개 별도의 사회자를 두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교회 식으로 한다고 일찍 끝나긴 다 틀렸다고 했다는데 난 30분이면 정확이 끝낸다. 하객들은 대개 교인들이 많아서인지 예식은 예배 분위기였다. 찬송가 소리도 컸고 분위기도 꼭 교회 같았다.

 

신랑은 좋아서 싱글벙글인데 신부는 긴장해서인지 표정이 기대만큼 펴지질 않았다. 아마 지금쯤은 신혼여행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예식 후 식당에 갔더니 어떤 중년의 아주머니가 인사를 한다.

 

"아이고, 방금 주례 서신 목사님 아니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너무 좋은 말씀이었구요 목사님 아주 훌륭해 보이십니다."

"별 말씀을요. 감사합니다. 근데 어디 교회 나가세요?"

"아, 전 교횐 안 다니구요. 그냥 시골 살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가까운 교회에 다니세요."

 

늦게 만난 두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또 집안에 새 사람이 들어와서 더 복되고 잘 되기를 기원하면서 새 출발한 가정을 축복했다.

2010.03.02 17:07ⓒ 2010 OhmyNews
#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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