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이랑혼자서 거의 두시간의 작업끝에 두 두둑을 쳤다.
홍광석
요즘 그런 일을 한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강낭콩을 심을 이랑을 만들고 텃밭에는 야콘 심을 두둑을 친다. 고구마 순을 내기 위해 씨고구마를 심을 두둑도 비닐 하우스 안에 만들었다. 이제 좋은 날을 받아 강낭콩과 고구마 씨앗을 넣으면 될 것이다. 아무 것도 심지 않았음에도 만들어진 이랑만 보아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사실 처음부터 특별한 사상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시작한 텃밭농사가 아니었다. 도시에서 낳고 자라 호미를 쥐어 본 적이 없는 아내 역시 자기만의 철학은커녕 확고한 농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출발한 일이었다.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처지이기에 큰 병원 가까운 도시 부근에 자리를 잡고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나의 주장, 그리고 아내와 나의 건강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지금도 새로운 농촌 공동체를 만들거나 특별한 작물을 심어 소득을 올리겠다 목표는 없다. 또 남다르게 살겠다는 계획도 없다. 개인적인 경험을 축적하고 관련 서적과 귀농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관련 지식을 쌓아가는 중이다.
텃밭 농사 3년. 아직 고진감래(苦盡甘來)를 말할 시기는 아니다. 그러나 희망을 보았던 3년이었다. 심은 작물들이 자라고 그걸 수확하여 보다 안전한 밥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 그렇게 함으로써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희망, 또 이웃 친지들과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는 기쁨을 맛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농사란 내가 손을 놓는다고 하더라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누군가에 의해 계승해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텃밭 농사라도 농기구는 갖추어야하고 절기와 토양을 살피고 이랑을 만드는 수고를 해야 한다. 하찮은 텃밭 농사라도 계획 없이 주먹구구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에 단계가 있고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 지난 가을 갈무리해놓은 씨앗을 챙겨야 한다. 상한 것은 버리고 튼튼한 것만 골라야 한다. 작은 씨앗이 수 만 배의 몸으로 자라 수 십 배의 열매를 맺는 여름, 그 열매가 익어 수확하기까지의 과정은 자연의 도움이 으뜸이지만 농부의 땀 없이 되는 일이 아니다. 우격다짐으로 싹을 틔우고 열매를 익게 할 수도 없고, 서둘거나 때를 놓치면 실패하는 것이 농사다.
앞으로 몇 줄의 이랑을 더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빠진 것은 없는지, 새로 심을 것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그런 일을 한다. 텃밭에 가지는 못하지만 농사는 계속되는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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