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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갈래 만갈래
찢어진 바람의 길을 찾는
승학산 기상레이더
관측소(觀測所) 가는 길에
비석도 상석도 없는
임자 없는 무덤 하나 있지.
이 무덤의 임자는
여느집 며느리처럼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
장님 삼년
석삼년도 부족해서
보릿고개 시집살이를
석삼년 더 사시다가
그만 폐병 걸려 친정으로 쫓겨와,
소쩍새 슬피 우는 어느 봄날
둘둘 아무렇게나 가마니에 말려
동네 상머슴 둘이 잡초 무성한 돌무지밭에
휙-던져버리고 내려 갔다는, 왕고모의 무덤....
열 네 살에 전주 이씨 문중으로 시집가서
아들을 못 낳은 그 칠거지악의 죄로
씨앗을 셋이나 봐도,
여자는 일부종사, 그 시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는, 첩들의 열 두자식들을
제 몸에서 낳은 자식보다 더 귀하게 키우셨으나,
피는 물보다 진하고,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 인지상정이란 말인가!
숱한 세월의 비바람에 봉분이 파헤쳐지고
지나다니는 등산객의 발길에 숱하게 짓밟혀도,
밟으면 밟을수록 파릇파릇 보리밭 푸르른
소쩍새 우는 봄이 승학산에 돌아 오면
영롱한 이슬을 밥눈물처럼 뚝뚝 흘리면서
하얀 며느리밥풀꽃들이
임자 없는 무덤에 찾아와
일배 이배 삼배 사배…절을 하며
살아생전 하얀 쌀밥 먹는 게 소원이셨다는,
아들 못 낳은 죄로 억울하게 쫓겨난
종가집 맏며느리 위해
모락모락 헛제삿밥 짓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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