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2008.8.4 보낸 출석 요구서감사결과를 최종 결정하고 해임 요구 결의를 하기 바로 전날에도 감사원은 나의 출두를 요구했다. KBS와 감사원 사이에 이런 내용의 문서를 여러차례 주고 받았다. 목표와 시한은 다 정해놓은 채 감사원은 전력질주를 했다.
정연주
정해진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충실한 답변을 하기 위해 답변 기한을 8월 5일까지 연기해줄 것과 사장의 출석·답변 문제는 답변서를 모두 검토한 후에 하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를 다시 했다. 8월 1일, KBS는 이런 내용의 회신을 했다.
답변서 제출 촉구 및 출석 답변 요구에 대해 우리 공사에서는 충실한 자료 작성을 위해 제출기한을 8월 5일(화)까지 연기해주실 것과 사장의 출석 답변 문제는 답변서를 받아 본 후 검토해 주실 것을 요청드린 바 있습니다.이와 관련, 답변서 작성을 조속히 마무리짓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답변서가 완료되는 즉시 제출하고자 하오니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사장은 사내외 현안과 베이징 올림픽 출장(8월 6일 - 8월 10일 예정) 관계로 귀 원의 출석 답변 요구에 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사료됩니다. 따라서 공사의 답변서 내용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후 사장의 출석 여부에 대해 다시 검토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드립니다.목표와 시한을 미리 정해놓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상식적인 요구를 거절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을 터였다.
더욱이 당시 나는 중국 광파전시국(신문과 방송 전반을 다루는 정부 부처. 한국의 문광부에 해당)에 의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공식 초청되었고, 특히 올림픽 개막식이 있는 8월 8일에는 중국 주석이 주최하는 오찬과, 광파전시국 장관 주최 만찬에도 공식 초청되어 있었다. 중국 광파전시국 왕태화 장관과 수년 동안 쌓아 온 우호관계로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으로 보였다.
나보다 한 살 위인 왕태화 장관과는 KBS의 위성채널인 KBS WORLD의 중국 진출을 위해 여러 번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인간적인 우애도 깊어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게 된 사이였다(KBS WORLD의 중국 진출을 위해 참 많은 공을 들였고, 많은 KBS 직원들이 고생을 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특보를 지낸 지금 KBS 사장 김인규 씨가 KBS 이사로 있을 때,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불공정 계약'이라며 그렇게 심하게 반대를 했다. 당시 KBS 노조도 한 패가 되어 몹쓸 짓을 많이 했다).
이런 공식 행사가 아니더라도 올림픽 중계방송을 위해 200명 이상의 제작진이 밤잠 설치면서 땀을 흘리는 취재 제작진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 다녀와야 할 처지였다. 8월 1일 감사원에 보낸 회신에서 밝힌 베이징 출장은 바로 이런 내용의 것이었다.
검찰은 출국 금지, 감사원은 해임 요구베이징 출장은 검찰이 8월 4일, 나에 대해 출국 금지조처를 내려버림으로써 무산되고 말았다. 외교적 결례가 될 수도 있음직한 그런 무리한 조치까지 내린 이유는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행여 중국 주석이 주최하는 오찬 자리에 이명박 대통령과 내가 함께 자리하는 것이 기분 나쁜 일일 수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그동안 조중동 등의 홍보권력을 통해 심어놓은 '배임죄의 중죄인'이 함부로 나돌아 다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나에 대한 해임이 임박했으니, 공식 오찬, 만찬 자리에 참석하는 게 정권 차원에서 볼 때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8월 8일 개막식 당일에 나는 KBS 이사회에서 해임 권고를 의결했으니, 그때 정권 핵심에서는 나의 해임이 임박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터다.
어쨌거나 8월 1일에 보낸 KBS의 회신에 대한 감사원의 답이 8월 4일(월)에 왔다. 오전 11시에 팩스로 왔다. 그 내용이 걸작이었다. 나에게 오후 2시까지 감사원에 출석하여 답변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제출하지 못한 3개의 답변서도 그 날 중으로 답변서를 보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출석 요구서를 받고 다음과 같은 답변서를 보냈다.
사장의 출석 답변 문제에 대한 귀 원의 요구사항을 보면 다양한 사안에 걸쳐 방대한 내용의 조사를 하겠다는 취지로 사료되는 바, 우선 각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질의내용을 보내 주시면 자료들을 다 확인하여 서면으로 1차 답변을 하겠습니다.사장 출석은 누차 답변한 바와 같이 전례가 없었던 사안이고, 더욱이 당일 11시 경에 팩스로 문서를 보내 당일 14:00까지 출석하라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무리하고 부적절한 요구라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당 공사는 귀원에서 각 답변서 내용 중 구체적 소명이 필요한 세부 질의사항을 명기하여 다시 보내 주실 것을 거듭 요청 드립니다. 당 공사는 이에 대한 성실한 서면답변을 드릴 것이며, 사장의 출석 여부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해 주길 바랍니다.감사원이 나의 출석을 그렇게 다그친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KBS의 설명은 이미 본조사 과정에서, 그리고 감사원 질문서에 대한 KBS의 답변서를 통해 대부분 이뤄졌으며, 내가 출석한들 답변 내용은 사실 뻔한 것이었다. 어쩌면 당시 감사원은 이명박 정권에 검찰과 충성 경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검찰에서 정연주 사장을 계속 소환하고 있으니, 감사원도 그런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정권 쪽에 보여주고 싶었을 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