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해중 고인돌멀리서 바라보면 현무암 덩어리에 지나지 않지만, 덮개돌 아래쪽을 다듬은 흔적은 분명해 보인다.
제주고고학연구소
세계유산 고인돌을 알기 위해 현장 답사를 바탕으로 여러 문헌들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제주도 해안에 고인돌로 추정되는 조형물이 있음을 알았다.
그동안 고인돌 답사와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고인돌의 숫자와 조성 연대 등에서 서로 엇갈리는 정보들을 주었다. 하지만 유독 "고인돌은 집단정착생활이 가능했던 농경사회에서 조성했다"는 내용에서는 한 목소리를 냈다.
청동기 시대 대규모 인력이 정착하는 데는 벼농사와 같은 농경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거대한 고인돌을 세우려면 수많은 노동 인력이 필요했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물론 부분적으로 어로와 수렵 활동도 했지만 이는 큰 의미가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강창화 박사(제주고고학연구소 소장)는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는 곳에 서 있는 제주도의 조형물(일명 '해중 고인돌')에 대해 "기원 후 2세기 무렵 조성된 것으로 파악되는 이것은 고인돌이 맞다"며 "바다에서의 어로 활동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단이나 어업 활동 중 사망한 사람의 무덤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직 학술적으로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지만, 밀물 때 덮개돌 부분까지 차올랐다가 썰물 때 전체 모습을 드러내는 이 조형물이 '해중 고인돌'이 맞는다면, 이는 '고인돌의 농경사회 조성배경'을 벗어나는 아주 예외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번 답사기에서는 빠졌지만, 앞으로 세계자연유산인 '제주도의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찾아 제주도에 갔을 때 '해중 고인돌' 현장답사기를 직접 전할 것을 약속드린다.
'자연과 물을 보존하라' 고인돌은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