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시 제주 북부 예비검속 희생자 원혼 위령비. 뒤쪽으로 공항의 경계가 보인다. 저 너머 어디쯤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
이광진
2009년 4월에 마무리된 유해발굴단의 발굴 당시 기사(제주일보,2009년 6월 11일자)을 보면, 259구나 되는 유골이 나왔다고 하니 엄청난 참극이 있었음에 놀라게 된다. 학살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이루어졌는데 1차는 군법회의에 회부된 군인과 무고한 민간인을 1948년 12월부터 1949년 3월 사이에 죽인 것이고, 2차는 예비검속 대상자로 잡혀온 사람들을 1950년 8월 19~20일 이틀에 걸쳐 총살한 것이다.
예비검속은 보도연맹과 관련이 있다. 원래 '좌익'인 사람들을 이 연맹에 가입시켜 통제하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지만 '뭣 모르는 양민'들까지 많이 가입시켜 놓은 당시 세태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도 죽고 만 것이다.
낮 동안의 레포츠공원은 한산하기 그지 없다. '아름다운 화장실'에 들러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추위에 급해진 오줌을 누고 내려와 위령비가 서 있는 곳으로 간다. 곁에 아무도 없으니 할 말도 없지만,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 해도 들을 수 없는 동네이다. '학살터'란 오명을 씻어보자는 의도인지 비행기가 몇 분 간격으로 큰 소리를 질러대 사람의 귀와 입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위령비는 검은 빛깔로 우뚝 서 있다. 이 비는 2005년에 세워졌으니 2007년 발굴조사가 시작되기 전의 일로 보인다. '쌩쌩' 달리는 차들이 지나기를 기다려 포구로 들어섰다. 포구는 아담한 크기이다.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건물도 두 개 올리고 방파제도 확장했지만 여전히 아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