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선수로 링에 오른 토니 애보트 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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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로 돌아온 애보트는 우울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셨고 권투선수가 되어 링에 올라 실컷 두들겨 맞기도 했다. 영국 유학까지 마친 엘리트의 행로치고는 엉망진창의 나날이었다. 그러다가 방황을 끝낼 심산으로 가톨릭 신부가 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3년 동안 공부한 세이트 페트릭 신학교에서 '미친 수도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적응에 실패해서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철없는 불장난으로 낳은 자신의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죄의식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애보트는 극단주의자로 변해갔다. 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과오를 깊이 뉘우치는 과정에서 순결지상주의에 함몰된 것. 결국 피임과 낙태를 반대하는 경직된 사고를 하게 됐고, 그 내용으로 대중 캠페인을 벌인 적도 있다.
그는 오랫동안 건설현장 허드레 일꾼, 과수원 감시원, 트럭운전사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던 중에 파트타임 저널리스트가 되었고, 직장에서 만난 마가렛 에잇킨하고 결혼했다. 딸 셋을 낳아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다가 1994년에 연방의회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나의 난소에서 당신의 묵주를 치워라!"토니 애보트 의원은 극단적 보수성향의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여 존 하워드 정부에서 보건장관직에 올랐다. 피임과 낙태 문제가 그의 업무소관이 된 것. 그렇지 않아도 고리타분한 그의 언행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왔던 여성의원들이 의도적으로 공격을 해서 심심치 않게 충돌이 벌어졌다.
호주 여성들이 '낙태약'으로 활용하는 사후피임약 'RU486' 판매 허용 권한을 보건장관으로부터 박탈해서 식약청으로 넘기는 법안을 여성의원 4명이 공동으로 발의한 것도 그중의 하나다. 그 법안은 1주일 동안의 난상토론 끝에 표결에 붙여져 허용 권한이 식약청으로 넘어갔고, 약 10년 만에 'RU486 판매금지 조치'가 풀렸다.
그 논쟁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이런 일도 벌어졌다. 녹색당 소속 캐리 네틀 상원의원이 "나의 난소에서 당신의 묵주를 치워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등원하여 의사당이 발칵 뒤집힌 것.
그뿐이 아니다. 그는 야당의원으로 처지가 바뀐 다음에도 사사건건 여성 의원들과 부딪쳤다. 특히 앙숙처럼 지내는 줄리아 길라드 부총리에게는 '똥 씹는 듯한 미소(a shit-eating grin)'라는 부적절한 발언을 해서 24시간 동안 의사당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2년 동안 의사당에서 마주친 청년이 내 아들이라고?길라드 부총리도 반격에 나섰다. "애보트 의원은 낮시간 TV에서 방송하기 어려운 내용의 악담을 쏟아내는 인물이라서 의사당 생중계를 하는 녹음 담당자를 계속 긴장하게 만든다"고 쏘아붙인 것. 애보트 의원한테는 뼈아픈 공격이었다. 바로 그 방송담당자가 한때 그의 아들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2004년 12월, 의사당 프레스갤러리에서 녹음 담당(국영 abc방송 소속)으로 일하는 다니엘 오코너가 입양부모를 졸라서 알아낸 전화번호로 생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보트의 여자친구였던 캐시 도넬리였다. 입양 후 27년 만에 최초로 걸려온 아들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란 생모는 아들에게 "토니 애보트 의원이 너의 아버지"라고 알려주었다.
다니엘은 기가 막혔다. 의사당에서 근무하면서 같은 빌딩 안에 사무실을 갖고 있는 토니 애보트 의원을 수도 없이 만났기 때문이다. 생모와 통화한 다음날, 애보트 의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 말없이 웃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니엘이 생부에게 한 첫마디는 "날 낳아주어서 고맙습니다"였다.
27년 만에 이루어진 감격적인 '부자 상봉' 통화였다. 당연히 수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나중에 생모와 함께 만나서 바비큐파티를 하자는 약속도 했다. 애보트와 도넬리는 27년 전에 헤어진 남남의 관계였지만 입양시킨 아들의 소식을 얻기 위해서 정기적인 통화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