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은 틀린 것?

등록 2010.02.08 11:40수정 2010.02.0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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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밥상에 찬을 올리는데 슬며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전날 취재 차 만난 원불교 시드니 교당 교무가 빈손으로는 보낼 수 없다며 기어이 빈대떡 한 접시를 싸 줬습니다. 하루 전에는 교회 행사에 갔다가 나물을 몇 가지 얻어왔습니다. 원불교의 빈대떡과 기독교의 나물이 한 밥상에 오른 것이 좀 우습지 않습니까. 시어머니는 절에서 얻어 온 음식이 못내 불편하신 듯했지만 저는 마치 종교간 반목과 갈등을 해소한 상징적 몸짓이라도 한 양 스스로 대견한 마음조차 들었습니다.

 

흔히 '다른 것과 틀린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비록 소소하고 하찮은 경우라 해도 살면서 다른 것이 곧 틀린 것일 때를 여러 번 경험합니다. 치약을 중간에서 짜서 쓰건, 밑동에서부터 눌러 짜건 그게 무슨 대수라고, 서로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우겨대니 부부싸움의 '건덕지'가 되는 것이지요.

 

어떤 새댁은 시어머니가 잡채를 만들면서 삶은 당면을 그대로 다른 재료와 무치는 걸 보고 약간 반감이 일었다고 합니다. 친정에서는 당면을 삶은 후 참기름에 살짝 볶아서 사용했기 때문에 순간 시어머니는 틀렸고, 친정어머니가 옳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무치든 볶든 잡채맛이야 거기서 거긴 줄 몰라서가 아니라 다른 것이 그저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탓입니다.

 

"기독교는 전도에 참 열심이고 신도들의 신심도 깊지만 타 종교에 대해 다소간 배타적인 면이 아쉽습니다."

 

그 날 만난 원불교 교무가 조심스럽게 한 말입니다. 이 말이 제게는 '기독교에서는 다른 종교를 틀린 종교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뉘앙스로 들려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굳이 종교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해서 고통과 불이익, 속박과 구속, 차별과 유린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빚어낼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 중에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신념이 대표적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는 정치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는 바람에 20년 넘게 감옥 살이를 했습니다. 국가 권력이 나서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매도하며 횡포를 부리는 통에 한 사람의 인생과 그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망가져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것이 곧 틀린 것으로 규정되는 것, 혼란이 한 쪽으로 정리되어 버리는 것은 대부분 힘의 논리에 근거합니다. 가정에서 아내가 실세라면 남편의 치약 짜기를 자기 방식으로 '굴복'시킬 것이며 그때부터 남편은 틀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보다 며느리의 말발이 더 세다면 적어도 그 집에서는 잡채를 만들 때 당면을 참기름에 볶아서 사용하는 것이 정석이며 옳은 방법입니다.

 

속되게 말해 기독교가 뭐가 아쉬워서 원불교의 '다름'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2천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예배당을 짓는다는 서울 강남의 어느 대형교회를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이 제가 사는 호주동포사회만 해도 기독교는 가장 힘이 센 종교입니다.

 

보통 월 30만~ 40만 원으로 생활해야 하는 교무로서 시드니 교당에서 4년간 시무를 하는 동안 청과물 도매시장에서 상인들이 버린 허드레 야채와 골병 든 과일을 주워 식생활에 보태며 그것으로 신도들의 음식 공양까지 해왔다고 하니, 모두 다는 아니라 해도 같은 성직자로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는 목사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기독교인은 교회 분위기상 친구 중에 불교도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두려웠다고 하니 다른 것이 곧 틀린 것이라는 무언의 압력을 느꼈던가 봅니다.

 

다른 것을 말 그대로 다른 것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은 흔히 강자에 대한 약자의 호소이자 다수에 대한 소수의 절규일지도 모릅니다. 다르다는 것이 단순한 이질감이나 이물감 정도에서 서로 서걱거리는 것이라면 별 문제가 아니겠지만 현실의 원리는 으레 한 쪽으로 기울 때가 많지 않습니까.

 

세상은 제가 차린 밥상 위의 평화와 공존처럼 녹록하지도, 도식적이지도 않은 곳이지만 '단정'이나 '치부(置簿)'보다는 '조화', '상생'이라는 말을 떠올리려는 노력은 계속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도 번거롭다면 공연히 아귀다툼 속에 말려들기 전에 다른 것이 곧 틀린 것이라고 지레 포기하며 사는 것이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자유칼럼그룹과 호주한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2010.02.08 11:40ⓒ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자유칼럼그룹과 호주한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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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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