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로크여인찬씨가 한문을 새긴 뒤 즉석에서 꽃을 새겨보겠다고 한 뒤 노란실과 초록실을 가지고 꽃 문양을 새기고 있다. 지금은 큰 문양을 새겨 달라는 이가 없지만 전에는 저 손에서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고 독수리가 비상했을 것이다.
김갑봉
"1㎠ 안에 20획 한자를 새길 수 있어야" 80년에 가게 '만물체육사'를 어렵사리 낸 여인찬씨는 군에 있을 때 펜팔로 알고 지내던 지금의 아내 김윤자씨(51)를 만나 결혼했다. 가게가 곧 살림집이고, 집이 곧 가게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부평미군기지는 일제 때 일본군이 조병창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당시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조병창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곳이 이른바 산곡동 '사택'인데, 그 사택이 시작되는 첫 번째 집이 '만물체육사'다.
시작할 때 20평 남짓했던 공간은 확대됐고, 하는 일도 체육사의 비중이 커졌다. 30년 세월을 같이 한 부부는 지금, 남편 여씨가 종종 아내에게 오바로크 자수 기술을 가르쳐주면서 전수한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아내 김씨는 "아직 초보단계다. 그래서 기초적인 이름을 새기는 것 외에는 그림이나 한자를 새기는 것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며 "남편 같은 기술자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단 남편도 바쁠 때면 기본적인 것은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고, 또 배워두면 요긴하게 쓸 때가 많다"고 했다.
남편 여씨는 자신도 지금은 잘 안 될 것 같다며 솜씨를 보여줬다. 그는 "맨 처음 배울 때 영문부터 배웠다. 사실 그림보다 글자가 더 어려운 법이다. 영문이 더 쉬워 영문부터 배웠고, 그다음 한글, 한문 순으로 배웠다"며 "1㎠ 크기 안에 20획 한자를 새길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림은 나중에 배웠는데, 당연히 연습해야 했고 어느 정도 감각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아내는 그리는 감각보단 보는 감각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웃음을 지었다.
군부대와 공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의 가게에는 군복과 노동자의 단체복 등이 점차 줄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학생들 명찰과 체육용품이 대신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 진 못했다.
여씨는 "오바로크와 더불어 군복을 수선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 일도 줄고, 공장이 사라지면서 노동자들의 단체복에 회사명을 새기는 작업도 점차 줄었다"며 "명찰도 90년대 들어서면서 아크릴판으로 바뀌고, 학교에서 운동하는 학생들도 줄어들면서 그 분야 일감이 줄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