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북한 음식점인 '평양해당화'는 점심과 저녁으로 종업원들이 공연을 펼쳐 손님의 흥을 돋운다
조창완
그럼 베이징 등 중국 대도시에서 한식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우선 옌볜 조선족 자치주 등을 비롯해 동북 3성에서 거주하던 중국 동포들이 베이징 등에서 '연길 냉면' 등 '조선족 음식점'을 내면서 대도시의 중국인들은 한국 음식에 대한 맛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포 음식은 확산 속도나 메뉴 등에서 빠른 발전을 보이지 못하다가 1990년을 전후로 한국인들이 급속히 중국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1992년에는 한중수교가 이뤄지며 사정이 달라졌다. 그 당시 주목받았던 우리 음식은 베이징에 있었던 '유경식당'이나 '해당화', '옥류관' 등에서 파는 북한음식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음식점이 없어서 북한 식당은 중국 출장 한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식사와 공연을 곁들인 문화나 한국에서는 흔히 맛보지 못했던 '가자미식해' 등이 관심을 끌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이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모두 북한에서 직접 파견된 아리따운 여성이라는 것도 작용했다.
북한음식점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잘 웃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손님이 요구하면 다정하게 사진을 함께 찍는 것은 물론이고 단골들에게는 미리 말을 거는 등 한결 친절해졌다. 또 북한식당을 찾는 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때는 공연시간이다. 과거에는 정치성이 많은 노래를 불렀지만 최근에는 '심장에 남는 사람' 등 서정적인 노래를 많이 부른다. 또 '목포의 눈물' 등 한국 노래도 불러서 방문자들의 흥을 돋우기도 한다.
그런데 수교 이후 한국 유학생이 봇물처럼 늘어나면서 베이징의 우다코우(五道口)나 톈진의안산시다오(顔山西道), 선양의 시타(西塔)에 한국 음식점이 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성공사례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첫 사례로 꼽을 만한 이가 '파파스'의 이기영 사장이다.
중의학을 공부하러 유학 온 이 사장은 1994년 창춘시에 첫 한국음식점 '파파스'를 차렸다. 우리 음식점이었지만 약간 퓨전의 개념을 넣었고, 체인망을 가동하면서 이 브랜드는 급성장했다. 음식점 자체의 성장세는 약간 꺾였지만 이사장은 '산천어' 웰빙 음식 체인이나 병원 등으로 사업 분야를 넓히면서 아직까지도 성공사례로 꼽힌다.
다음 성공사례로 꼽히는 것은 '설악산 불고기'의 홍순대 사장이었다. 이기영 사장보다 먼저 사업을 시작했던 홍 사장은 사업 10년째인 2001년에는 30여 개의 체인점을 낼 만큼 성공했다. 홍 사장의 성공 비결은 고기의 질을 유지하고, 주방을 공개하는 한편 구워먹는 문화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선양, 베이징, 톈진 등으로 너무 빨리 체인망을 넓혔고, 관리 부실 등으로 얼마되지 않아서 체인망들을 접고 지금은 선양의 본점에 치중하고 있다.
중국인 손님 끌지 못하면 위기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