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슬픔

7080음악 에세이, 김규민의 <옛 이야기>

등록 2010.02.04 11:16수정 2010.02.0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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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바빴다. 한 해에 딱 한 번 까마귀들의 머리를 밟고 그리운 견우를 만나는 직녀처럼 모든 노동에 집중을 다했다. 설거지를 끝낸 뒤 청소기를 돌리고, 베란다 빨래걸이에서 바싹 마른 빨래를 걷어와 양 끝을 잡아당겨 반듯하게 편 뒤, 두꺼운 것은 손바닥으로 두드려 잘 개킨 다음, 정해진 제 자리에 수납까지 끝냈다.

 

머그잔으로 한잔 가득 커피를 타서 거실 소파에 앉을 때까지 마음은 그리운 사람과의 해후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시간보다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음악을 틀지도 TV를 켜지도, 그 시간이면 꼼꼼하게 살피던 조간신문도 보지 않았다. 마시던 커피 잔을 내려놓고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가면서도 거실 중앙까지 밀고 들어오는 햇살 한번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리고 화장을 했다. 수초처럼 길게 등을 덮고 있는 젖은 머리를 한 올 한 올 드라이하고, 무스크 향 샤워 코롱을 루비 귀걸이를 매단 양 귓불 뒤에 뿌렸다. 그리고 보았다. 낯익은 듯한, 그러나 어쩌면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한 한 여자. 호명해 줄 이가 없으니 이름조차 낯설어진, 그래서 존재에 대한 확신에 자신 없어진 한 여자가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직녀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그때까지였다. 설렘과 부산함, 냉수 같은 긴장과 즐겁던 치장 노력. 시간은 오후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침을 거른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냄비에 물을 받아 행주로 바닥 물기를 닦은 다음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코크를 점화하던 순간 푸른빛으로 치고 올라오는 열기가 느껴졌다. 그 시간 유일하게 내 곁에 있는 움직이는 물체였다. 모든 사물이 정해진 자리에서 표정 없이 박혀 있는 이 정지된 공간에서 내 손끝의 미세한 동작만으로도 금방 깨어나 치솟아 오르던 불꽃, 그 선량한 동력 앞에서 나는 반가움에 몸을 떨었다.

 

거실을 서성였다. 움직이는 나를 인식하고 싶었다. 슬리퍼를 소리 나게 끌면서 이 방 저 방 돌아다니고 서재에 들러선 컴퓨터도 켰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집 전화기로 핸드폰 번호를 눌러 "응, 나야." 하며 일인 극 대사조로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적당히 배합된 화학조미료가 면에 섞여 끓고 있었다. 냄비 뚜껑에 서리고 있는 김을 보며, 끓는 물체를 덮고 있는 모든 건 그 열기에 데는 고통을 수반한다는 걸 알았다. 수포처럼 끈끈한 아픔도 무엇인가를 덮고 있는 자의 몫인 것이다. 끓고 있는 라면이 냄비의 열기를 높이는 동안 내 몸은 그것을 덮고 있는 뚜껑이 되어 만지면 델 듯 슬픔을 끓여내고 있었다.

 

옛 얘기 하듯 말할까/ 바람이나 들으렴

거품 같은 사연들/ 서럽던 인연

눈물에 너는 싸인 채/ 가시밭 내 맘 밟아

내 너를 만난 그곳엔/ 선홍빛 기억 뿐

널 마중 나가 있는/ 내 삶은 고달퍼

진무러진 서러움/ 내 어깨에 춤추면

갈테야 그 하늘가/ 나를 추억하는 그대

손수건만큼만 울고/ 반갑게 날 맞아줘

왜 이리 늦었냐고/ 그대 내게 물어오면

세월의 장난으로/ 이제서야 왔다고

               김규민 <옛 이야기>

 

 

인간이 지닌 모든 감정 중에서 슬픔만큼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은 없다. 그러나 그렇게 편협한 슬픔이란 감정도 밑바닥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타자라는 객관적 주체가 동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슬픔이란 대상이 있어도 없어도 태생적으로 나타나는 외로움과는 구별되는 감정인 것이다.

 

나는 견우의 단 하나의 사랑 직녀가 아니었다. 견우라는 상실된 타자로 인해 내 슬픔은 객관화되고 더욱 구체화되었다. 구체성의 확보! 이로써 내 슬픔은 정당한 것이다. 울어도 좋을 자유를 취득한 품격 있는 슬픔, 아무도 궁상이라고 나무라는 이 없을 것이다.

 

김규민의 <옛 이야기>는 그래서 슬픔을 느끼게 한다. 늦가을 해질녘 갈대밭을 나를 추억하는 사람에게로 진무러진 설움을 안고 걸어가고 있는 한 사람의 영상을 보게 한다. 널 마중 나가 있는 내 삶은 고달프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로의 헌신과 몰입을 뜻하지 않을까? 헌신과 몰입이란 대상이 있을 때 가능하다.

 

라면은 이미 불어 있다. 맛있게 끓여진 면발 상태를 지나 누렇게 뜬 살갗으로 좁은 냄비 안에 퍼져있다. 치장하듯 함께 넣은 파와 고추가 불어터진 면발 속에서 제 자리를 못 찾고 떠다니는 걸 보며 나는 슬그머니 좀 전에 걸었던 귀걸이를 뺀다. 제 때를 지난 몸에 귀걸이라니.

 

화장한 얼굴을 지울 일이 아득하다. 그런 하루가 있었다. (*)

2010.02.04 11:16ⓒ 2010 OhmyNews
#김규민 #슬픔 #서석화 #하루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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