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자분들 세상살이 좋아지셨나요?

[옛 소리 세태풍자 14]

등록 2010.02.03 14:58수정 2010.02.0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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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 풍속화 중 디딜방아 과거 어머니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했다. 나들이는 생각도 못하고
백천 풍속화 중 디딜방아과거 어머니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했다. 나들이는 생각도 못하고하주성

사람이 살다보면 괜히 우울해질 때가 있다. 무심한 척 하다가도 곁에 있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우 녀석들에게 전화를 해도, 함께 술 한 잔을 기울일 마땅한 사람도 없다. 혼자서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가 술잔을 비워보아도, 술 맛이 나질 않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만큼 간사한 것도 없다.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혼자 시무룩해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방에서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난다.


여자분들 4 ~5명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다. 요즈음은 별 이상한 풍경도 아니다. 아마 동창회라도 하는가 보다. 그런데 신경을 쓰지 않아도 소리가 들린다. 그 이야기 소리들을 들어보니, 대충 남편의 험담들이 한창이다. 남자들도 별로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들리는  이야기들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저 나이쯤 들면 남편 험담 한 가지씩은 누구나 할 수 있을 테니까.

남편 험담이 시어머니에게로

남편 험담을 하다가 지쳤는지, 이번에는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시어머니에 대한 험담이다.

"애, 우리 시어머니는 아직도 남편이 아이인줄 알아. 더 가관인 것은 우리 남편이야. 어머니가 말만하면 괜히 엄살을 부리지를 않나. 내가 혼자 잘 먹고 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가 나한테 남들처럼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말이야."

남편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 마디씩 하는 것이 농도가 점점 심해져 간다. 남의 일에 간섭할 것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들을 듣다가보니, 참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살림살이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저렇게라도 풀고 살 수 있는 요즈음 여자들이 참 행복하단 생각이다.


꼬댁각시 불쌍한 둥 한 살 먹어 어멈죽고
두 살 먹어 아범 죽고 세 살 먹어 말배우고
네 살 먹어 글을 배워 삼촌네 집을 찾아갔네
심촌숙모 불 때다가 부지깽이로 나려치네
아이고 담담 설운지고 이내 설음 또 있으랴

삼촌이라 방 쓰는데 방이라고 들어가니
삼촌이 거동보소 방 쓸다 말고 빗자락으로 나려치네
아이고 담담 설운지고 이내 설음 또 있으랴


꼬댁각시 세대에 태어났으면 어쩔래?

백천 풍속화 중 일부 - 빨래터 애업고 빨래하고 밭매고 참해 나가고 방아찧고, 그리고도 밤이되면 베를 짜고 하던 어머니들은 남편이 험담조차 할 기력이 없었다
백천 풍속화 중 일부 - 빨래터애업고 빨래하고 밭매고 참해 나가고 방아찧고, 그리고도 밤이되면 베를 짜고 하던 어머니들은 남편이 험담조차 할 기력이 없었다 하주성

예전에 충남 부여군 옥산면 봉산리에서 채록한 '꼬댁각시'라는 소리의 사설이다. 벌써 20여 년 전에 이런 소리를 하신 할머니들이, 지금은 한분도 살아계시지 않다. 그런데 이 소리를 하신 할머니들께서는 그때만 해도, 이렇게 힘든 세상을 살고 계시다고 스스로가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세상이 많이 변하지 않았느냐고 말씀을 드렸더니, '어릴 적에는 시집살이가 힘들었고, 지금은 며느리 눈치 보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결국 우리들의 어머니들께서는, 살아생전 한 번도 마음 편하게 살아보질 못했다는 말씀이다.

그 시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지금의 어머니들. 그렇다고 지금의 어머니들은 과연 고통이 없을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 지금은 지금대로 고통은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저렇게 술잔을 비워가며 남편과 시어머니를 험담하는 것으로, 그 고통을 조금은 잊고 살고 있다.

여름이라 돌아오면 무명치마 무명적삼
튼튼감겨 양지양지 뙤양양지 내다 세우고
겨울이라 돌아오면 마포치마 마포적삼
입혀갖고 그늘그늘 석양그늘 내어 세우네
그럭저럭 십 오세가 먹어서
시집이라 간다는게 고자 낭군 얻어갔네

그나저나 믿고 살라고 했더니만
고자 낭군 3일 만에 톡 죽네그려
아이고 담담 설운지고 이내설음 또 있으랴

남편 험담하고 세상살이 좀 편해지셨습니까?

백천 풍속화 - 다듬이질 어머니들의 고생은 끝이 없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일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백천 풍속화 - 다듬이질어머니들의 고생은 끝이 없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일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하주성

남편 흉을 그렇게 보아보았자, 결국은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이다. 한 집에 사는 사람이 그렇게 흉허물이 많다면, 같이 사는 사람 별반 다를 것이 없을 텐데. 결국 '자기 얼굴에 누워서 침 뱉기' 같은 그런 말을 하면서도 연신 재미있어 하시는 분들. 요즘 TV 개그 프로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여자분들 그렇게 하고 살림살이 좀 나아 지셨습니까?"하는 이야기다. 만일 이 분들이 꼬댁각시 시절에 태어났다면 어찌 하셨을까?

아마 한 분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렇게 떠들고 흉을 보다가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응, 여기 ○○이네 집인데, 곧 들어 갈꺼야. 저녁은 먹고 와" 세상에,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누구네 집이라니.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 저녁은 알아서 먹고 오라니. 그래서 그런 TV 개그 프로가 생겨난 것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꼬댁각시 시절을 보낸 우리 어머니네들만 불쌍하단 생각이다. 고자서방도 위하고 살아갈 수 있는 어머니들. 생각만 해도 죄스럽기가 이를 데 없다.

'요즘 어머니들, 세상살이 참 좋아지셨습니다 그려.'
#세상살이 #요즘여자들 #어머니 세대 #꼬댁각시 #백천 풍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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