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관의 핵심적인 전시 코너 중 하나. 미쯔비시 광업의 하시마 탄광으로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시내의 조선소에 이동 배치된 후 원자폭탄에 피폭당한 고 서정우 씨의 삶과 증언 및 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강제연행과 실태 및 사망자 명단을 전시하고 있다.
전은옥
한편, 이 자료관의 탄생에 있어 뜻있는 일본 시민들뿐 아니라 밑거름이 되고, 격려와 함께 채찍질이 되어준 또다른 존재들이 있었다. 나가사키에서 강제연행과 민족차별, 피폭이라는 삼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조선인 중에는 광복 후 귀국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고 이기상· 박민규· 서정우 씨 등 나가사키의 '자이니치(在日)'들은 자신의 강제연행 혹은 피폭 경험을 증언함과 동시에 일본사회 안의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끝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일본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웠다.
한국 사회에서는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버려지거나 이용당하기만 했던 '자이니치(在日)'들은, 일본사회에서는 차별받는 약자로서 일본 사람들과 연대하여 전후를 올바르게 청산하고 차별없는 세상, 인권이 존중받고 더이상 전쟁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싸워 왔다. '자이니치(在日)'의 존재, '자이니치(在日)'의 고난, '자이니치(在日)'의 말과 글은 전쟁의 시대를 반성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고, 정의와 인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일본 사회의 시민들뿐 아니라, 역사를 잘 몰랐던 젊은 세대의 마음까지도 움직였다. 어쩌면 지금의 '한류(韓流)'는 실제 그 원류가 '자이니치(在日)'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가 좀처럼 시민운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일본 시민사회의 위기의식 속에서도,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을 떠받치는 주요 활동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후쿠다 미치코(30세)씨도 '조선인 피폭자' 박민규 씨와의 만남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다. 후쿠다 씨뿐 아니라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이 나중에 "자이니치(在日) 차별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친구들과 함께 불평등 및 차별에 맞서 함께 싸우고 싶다."는 결의문을 보내온 적도 있다.
이제 일제강점기의 피차별 민족으로서 겪은 아픔이나 굶주림, 학대, 강제연행과 징용, 성적 유린, 전쟁과 원자폭탄 피해의 시대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생존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차별받는 '자이니치(在日)'와 함께 싸워왔던 일본 사람들, 나가사키 시민들의 소중한 뜻이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을 통해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고 있다.
"알지 못했다. 진정한 사실을. 좀더 알고 싶다. 전하고 싶다. 진실을." 자료관을 견학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만들어 보낸 기념물에 쓰여진 문구다. 학교 선생님의 인솔에 의해서 오게 되었든, 혹은 연휴에 친가를 방문하거나 여행길에 올랐다가 우연히 자료관을 발견했든, 책이나 팸플릿 또는 지인에 의해 이곳의 존재를 알고 일부러 멀리서까지 찾아온 경우이든, 평화자료관이 있어 사람들이 모여들고 흩어지고 다시 모여들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이곳을 떠받치는 것은 깨어있는 양심의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재산을 털고, 누군가는 시간을 털고, 누군가는 지식과 재능과 노동력을 아낌없이 제공하고, 자신에게 가능한 것이라면 작든 크든 기꺼이 헌신하고 있는 희망의 사람들이다. 전쟁과 학살을 저지른 것도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부끄러운 부분도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사람이다. 그래서 역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나가사키에 오거든 꼭 오카 마사하루 평화자료관에 들러주시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유하기
조선인과 중국인, 왜 일본까지 와서 죽어야 했나?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