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 매우 맑은 우리 동네 욕쟁이 할머니

걸죽한 욕을 듣고 싶기도 한 이 때

등록 2010.01.25 15:26수정 2010.01.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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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가면 남편을 사별하고 홀로 여생을 보내는 어머니 친구 몇 분이 계신다. 80세가 넘은 노인들이지만 매일 바닷가에 가서 조개를 캐고 굴을 따 적지 않는 수입을 올린다. 대부분 객지에서 어렵게 사는 자식들과 손자들을 위하여 쓰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 친구 중에 '욕쟁이 할매'가 있는데 하도 욕을 잘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6남매는 모두들 대처 나가 살아 그들이 잠자던 여러 개 빈방이 있는 넓은 집에서 혼자 산다. 명절이 되어 아들 친구들이 찾아와 인사하면 그 입에서 상상하지 못할 걸쭉한 욕이 튀어나온다.

 

"이 씨부랄놈아! 돈 많이 벌었냐! 혼자 사는 네 에미 자주 찾아와 이놈아!"

 

이 정도는 보통 이상 아주 양호한 편이다. 그 입에서 거미줄처럼 이어 나오는 적나라하고 생생한 표현들로 된 욕을 듣고 있으면 인사하러 간 아들 친구가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어릴 때 우리 동네엔 유난히 욕이 많았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쓰는 언어 중 욕이 상당 부분 차지했다. 선생님들은 네모난 판에 흰 종이를 붙이고 '나는 욕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을 써서 목에 걸 수 있게 만들었다. 반장이 욕한 아이를 찾아 목에 걸어 주었고, 그 목걸이를 걸고 벌을 받던 아이는 다른 아이가 욕을 하면 벗어서 그 아이 목에 걸어주곤 하였다.

 

아이들이 욕을 잘하게 된 원인은 부모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어른들은 자기 자식들에게도 무지막지하게 욕을 해댔는데 친구 아버지는 아들에게 '밥 빌어다 죽도 못 쒀 먹을 놈'이라고 하여 지금까지 기억이 남는다. 보통 어른들이 화나면 자기 자식들에게 퍼붓는 욕이 '미련한 놈, 빌어먹을 놈, 나가 뒤질 놈, 미친 놈, 씨부랄 놈, 씨팔 놈, 염병할 놈'이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욕들이 존재했고 생활 언어로 사용되었다.

 

이런 욕이 점점 줄어들고 거친 언어가 부드러워진 것은 동리 유일한 교육기관인 초등학교 교육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욕하지 말라 가르치고 벌을 주어도 집에 오면 어른들이 일상 사용하는 언어가 욕이니 어린 우리들이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작은 동리에 교회가 세워지고 아이들이 그 교회에 나가서 일요일 아침과 목요일 저녁에 예배드리고, 청년들과 어른들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여 욕을 잘하시던 분들이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었으니 자식들에게 함부로 욕할 수 없는 점잖은 분들로 바뀌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욕을 잘하시던 어른들이 세월 앞에 무너져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걸쭉하던 욕들도 함께 장사를 지냈다는 점이다. 눈이 크고 마음이 선하신 아랫말 선장님도 대단한 욕쟁이셨는데 내가 군대 간 사이 세상을 떠나 그분 대를 이을 분이 없어지고 말았다.

 

특이한 것은 그 욕쟁이 할매의 심성이 매우 착하고 맑다는 것이다. 그분이 사는 집은 동리 사랑방이 되어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매일 모이는 마실 집이다. 그 집은 동리 가운데 있어서 접근성이 편리하기도 하겠지만 그 욕쟁이 할매가 주는 편안함 때문일 것인데 할매는 늘 먹을 것을 준비했다가 친구들이 오면 '이거나 처먹어!' 하고 내놓는다.

 

외롭게 사는 어르신들은 며느리가 옷을 사 보냈을 때, 그리고 아들이 집을 장만했을 때, 손자가 대학을 졸업하여 취직하고 장가들 때 욕쟁이 할매네 가서 자랑한다. 다 들은 할매는 거칠고 걸쭉한 욕 한마디로 축하해준다. 자식과 며느리에게 받은 속상한 일을 가슴에 담고 그 욕쟁이 할매네 집에 가서 풀어 놓으면 '그 씨부랄 년!' 하면서 시원하게 욕을 해주어 위로해준다. 할매의 특징은 스스럼이 없는 사람에게 욕의 강도가 더 세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하셨는데 이것은 '멍청한 놈, 미련한 놈'이라는 욕을 통하여 상대방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라는 말씀일 것인데, 할매 욕은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끔 고향에 가서 그 할매를 만나 인사를 하면 자신의 셋째아들의 친구인 나에게는 욕을 하지 않고 웃기만 하는데 깊이 팬 주름과 거친 욕이 대비되어 묘한 매력을 주는 사람이다.

 

요즈음은 어딘가 누군가를 향하여 시원하게 욕을 한번 해주고 싶기도 하고, 욕쟁이 할머니의 정겹고 걸쭉한 욕을 듣고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욕 이야기를 했더니 내 입에서 욕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보면, 욕은 전염성이 있는 듯하니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2010.01.25 15:26ⓒ 2010 OhmyNews
#욕 #할머니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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