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구슬나무아래의 꽃은 이전자료이다. 멀구슬나무에 서려있는 제주여인의 아픈 삶의 단편들이 마음 아프다.
김민수
서귀포시에 있는 모이세 식당에서 해장국을 먹고 한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산간도로를 거쳐 몇몇 마을을 돌아보고 공항으로 가면 얼추 비행기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제주 여행은 관광지 중심으로 도는 것보다 중산간도로를 따라 제주의 마을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다.
중산간 마을에 들어서니 돌담 사이로 멀구슬나무가 노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겨울을 나고 있다. 그런데 띄엄띄엄 자주 눈에 띈다. 꽃만 볼 때에는 왜 멀구슬나무일까 했는데, 열매를 보면 그래서 멀구슬나무구나 알게 된다.
멀구슬나무는 제주도 여성의 나무였다고 한다. 꽃이 예쁘고 향기가 고와서가 아니라 조금은 슬프고 고단한 여성의 삶과 관련이 있는데 원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때 멀구슬나무 껍질을 벗겨 달여 마시곤 했단다. 그러니까 낙태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멀구슬나무는 울안에는 심지 않고 으슥하지만 누구든 볼 수 있는 곳에 심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울안에는 거의 없고, 주로 돌담 밭 주변에 한두 그루씩 자리하고 있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을 만큼이다. 요즘이야 그 쓰임새를 잃어버리고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지만, 그 나무 하나에도 제주인의 고단한 삶이 들어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