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소리 최용석 님민중의 집에서 화요밥상 모임 후 작은 공연을 풀어낸다.
윤성근
'바닥소리'는 젊은이들로 구성된 창작 판소리 모임이다. 지금껏 우리는 심청가나 춘향가처럼 예부터 전해진 판소리 듣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창작 판소리를 한다는 것 말이다. 나는 여전히 생각이 좁은 사람이었는가 보다. 작년 겨울 바닥소리의 최용석님 공연을 살짝 맛보기로 본 후에 비로소 이 '창작 판소리'라는 것에 깊은 관심이 생긴 것이다. 이상북 문을 닫고 가느라 정작 저녁 밥상 공동체에 참석하지 못하고 공연만 봤지만 또 다시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기에 행복했다.
내가 바닥소리 공연을 일부러 찾아간 이유는 최용석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방을 다 빠져나가고 난 뒤 최용석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는 한 시간 남짓 풀어낸 소리 공연에 많이 지쳤는지 의자에 앉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궁금했던 건 과연 창작 판소리라는 장르가 뭇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느냐 하는 거였다. 이상한 질문 같지만, 솔직히 이것이 내가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인정'이라는 건 사실 어떤 일을 할 때 별로 필요 없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가 등산을 하는 등산가라고 한다면, 나는 '등산가'라는 이름 때문에 등산을 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지금 등산가라고 불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믿는다. 어느 책에 본 말 그대로, '산이 좋아, 산이 거기 있으니 오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엄홍길 대장이나 동네 산악회에 소속되어 주말에 북한산을 오르는 사람이나 다 똑같은 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창작 판소리를 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못 받았던 적이 있습니까?" 나는 마치 전문 기자라도 되는 양 그렇게 물었다. 최용석님은 아직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순진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당연히 그런 일이 많았지요." 최용석님은 의외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젊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그것도 전통 판소리가 아니라 창작 판소리를 한다고 하니 일부 전통 판소리 하는 분들에게 질타도 적지 않게 들었다는 얘기다. 판소리라는 건 영화 <서편제>의 그것처럼 한이 서리고 피나는 고통 끝에 얻어지는 산물인 것인데, 이런 길을 가지 않고 판소리를 흥미 위주 공연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해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는 거다. 이런 말을 듣고 나는 진심을 이야기했다.
나 역시 민중의 집에서 멀지 않은 응암동에 작은 공간을 열고 책방을 하고 있다. 이상북이다. 중고책 파는 일을 주로 하고 있지만 나름 철학을 갖고 이 공간을 색다르게 운영하고 있다. 책방에서 노래 공연도 하고 그림 전시회도 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독서 토론을 하는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나는 책방에서 책만 파는 것에 반대한다. 새 책을 파는 가게는 이런 운영 방식이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을 했고 처음부터 책방을 문화공간으로 겸할 생각에 헌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이제 3년이 되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동네 사람들이 많은 응원을 해주었다. 동네 골목에 있는 책방이 동네 사람들과 함께 섞여서 숨 쉬고 살아간다는 데 지금까지 의미를 두고 운영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운영하는 걸 두고 말이 많다. "헌책방이라면 책만 팔아야지, 문화 활동을 겸하면 그건 헌책방이 아니다"라는 말을 가끔 들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바닥소리 최용석님도 자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며 다른 이야기를 해 주었다.
판소리계는 왜 창작 판소리를 싫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