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사 알렌과 함께 수술을 하고 있는 황정
SBS
봉건제도가 무너지며 서양문물이 밀려들기 시작한 개화기의 조선은 한마디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혼란기라 할 수 있다. 반상의 구분이 사라지고 신분차별이 철폐되는 갑오개혁(1894)은 백정 소근개에게 새로운 인생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같은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알렌이라는 운명적 스승을 만난 소근개는 이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게 된다.
이는 중인에 속하는 통역관의 딸이었던 석란(한혜진)에게도 다르지 않게 적용된다. 구중심처에서 바느질이나 배우고 있어야 할 규수가 서양학문을 배우고 마침내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기까지 그 시절이 아니었다면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양반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일찍 실용적 서양문물과 서양학문에 눈을 뜨게 되어 서양의사를 꿈꾸어 왔던 백도양에게는 그리 반갑지 만은 않은 변화였다. 예전 같았으면 감히 말 섞기는커녕 고개를 들어 얼굴을 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을 법한 근본도 모르는 자(황정 즉, 소근개)와 동문수학하는 것을 수모(?)로 여기는 도양.
아직은 초반부에 지나지 않지만 드라마의 축을 이루고 있는 두 주인공 황정과 백도양의 대결구도는 흥미진진하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황정(박용우)과 천재성은 없지만 부단히 노력하며 황정의 천재성을 끊임없이 시기하고 질투하는 백도양(연정훈). 그 둘은 마치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처럼 보는 사람에게조차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훗날 조선 최초의 여의사가 될 아름다운 신여성 석란(한혜진)의 사랑을 놓고 벌이는 두 남자의 대결구도 또한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한층 맛깔나게 하는 양념이 아닐 수 없다.
초반부 의학드라마냐, 역사드라마냐 말들이 많았던 <제중원>이 지난 1월 19일 방송된 6회에서 드디어 수술다운 수술 장면을 보여주었다. 소근개의 뒤를 쫒던 정포교가 머리를 크게 다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머리뼈를 뚫는 수술을 해야 했던 것이다.
잠행을 나온 고종마저도 얼어붙게 했던 긴박한 수술이었지만 전기충격기(Electricity)를 이용한 심폐소생술 장면에서는 '일렉트리시티'를 '일렐레...'라고 불렀던 황정의 순박한 모습이 오버랩되어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알렌과 황정의 수술 덕에 목숨을 구한 황포교. 그는 황정의 정체가 백정 소근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그쳐 묻는 백도양의 질문에 함구한 채 행방을 감추고 만다. 황정의 진심을 다한 치료에 육체적인 상처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치유되고 변화된 첫 번째 환자인 샘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세상. 돈이라는 새로운 권력에 의해 새로운 귀족 계급이 생겨나는 세상, 그런 귀족계급에 의해 의료서비스와 질이 차등 적용되는 세상, 인술보다는 돈벌이에 관심이 많은 의사들이 판치는 세상...
이런 불행한 세상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백정 출신 의사와 기생 출신 간호사, 중인 출신의 여의사가 활약 했던 이 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은 아주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격변기 속에 신분혁파와 함께 큰 꿈을 이루어낸 우리 선조들처럼 우리라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소 잡는 칼 대신 수술용 메스를 잡은 황정. 신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길로 접어든 황정의 앞길은 그리 순탄하지 못할 듯하다. 의사로서 독립운동가로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살아낸 황정과 그와 함께 역사의 회오리 속을 해쳐 나왔던 <제중원>사람들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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