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요강을 거절당하고 이것을 사 왔지만, 혼자서 무안만 느끼고 말았다
김수복
요강이 너무 오래된 것이라서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인가, 사기로 된 것이라서 너무 무겁고 버거운 것인가, 등등 이런 따위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아들, 급기야는 시장에 나가서 가볍고 번쩍번쩍 빛나는 스테인레스 요강을 삼 만원이나 처들여 가며 사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는 캄캄한 화장실에서 헤매다가 넘어져 오른쪽 눈꼬리가 찢어지는 사고를 당해야만 했다.
아 이, 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미련한 놈이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고 남의 탓만 하더라고, 나는 여전히 문제의 핵심을 내 안에서 찾으려 하기보다는 어머니에게서 찾고자 헛된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것이 물이었다. 물, 목이 마를 때 마시는 물, 밥을 먹고 난 뒤에 마시는 숭늉 같은 것들, 그랬다. 어머니는 물을 안 마시고 있었고, 물로 된 음식 또한 피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 새삼스럽게 발견한 현상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우유라든가 주스 같은 음료수를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목이 타기 쉬운 여름에도 음료수를 드리면 들었다 놓았다 잠깐 입에 대보고는 밀어놓기 일쑤였다. 목이 마르다고, 물을 좀 마셔야겠다고 하시면서도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조금 떠서 입술이나 축이고 말았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도 그저 어머니가 체질이 변했나보다 여겼을 뿐 오줌과 연결해서 생각해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물은 곧 오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진즉에 그것을 간파하고 가능한 한 물로부터 멀어지고자 내심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던 것을, 아들은 전혀 다른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물을 피하는 것이 오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아직 그것이 이불과도 관련이 있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왜 밤이면 그렇게도 자주 화장실 출입을 하시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 생각을 하고 관찰을 해보니 역시 또 그랬다. 낮에는 서너 시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화장실을 어머니는 밤만 되면 한 시간에 한 번, 혹은 삼십여 분에 한 번꼴로 드나드는 것이었다. 화장실 문 앞에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여보면 오줌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짐작컨대 찻숟갈로 하나 정도일 것 같고, 어떤 때는 두세 방울 정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다가 그만이었다.
괄약근 기능이 약화되어 그렇게도 자주 요의가 느껴지나 보다, 생각할 수도 있기는 했지만, 낮과 밤의 차이가 심한 이유가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한 그것을 답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야아 이것 참 어렵구나, 어렵구나, 내심 속으로 그런 소리나 중얼거리며 또 며칠이나 아니 몇 달이나 흘렀던가.
사흘 전의 일이었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이른 아침이었다. 어머니의 행동이 아주 이상했다. 뭔가를 구석에 숨기는 것 같았고, 숨긴 그것을 다시 꺼내 이미 개켜놓은 이불 속에 넣고 있었고, 잠시 뒤에 그것을 다시 꺼내 옷자락 속에 넣는가 싶더니 도로 꺼내들고 손으로 둘둘 말아 주먹에 꼭 쥐고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누운 채로 숨소리까지 죽여 가며 살펴보는 내 눈에 그것은 속옷이었다. 팬티였다.
엄마 지금 뭐해? 소리가 내 입에서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지만, 무슨 계시를 받았는지 나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입을 꾹 다문 채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젖은 속옷을 벗어들고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구석에 숨겼다가 다시 꺼냈다가 허둥거리는 어머니를 지척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나, 그제야,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쌓이고 쌓였던 비밀의 덩어리가 무너지면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이었다. 어머니에게는 아마도 이불에 오줌을 싸지 않는 것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이면서도 최종적인 어떤 것, 마지막 방어선 같은, 자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존엄성이라고나 해야 할 어떤 것이었을 게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던가. 어머니는 치매라고 하는 그 무시무시한 것에 잡혀 있으면서도 정신만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나름 사력을 다해 투쟁하고 있었던 것을, 아들은 그저 편리함만을 생각하고 왜 요강을 쓰지 않느냐, 왜 이불을 덮지 않느냐, 투정이나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모르겠다. 내가 여자였다면 여자인 어머니의 이런 심층심리를 좀 더 일찍 간파하고 크게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물을 글썽였을지도.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