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철원 노동당사에서

통일 서원에 부쳐

등록 2010.01.21 15:38수정 2010.01.21 15:3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노동 당사에서 ⓒ 송유미


함경북도 청진 태생


이산가족 우리 어머니

나 어릴 적 두 갈래
머리를 묶는 거
유독 싫어하셨지

사과 따위를 쫙 둘로 갈라 
나누어 먹는 것도
끔찍히 싫어하셨지 

나라의 몸이
두 동강 난 마당에
너가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

아무 것도 모르는 동생들까지
싸잡아 회초리 때리며
나무라셨지.


자나깨나 통일을 기다리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한번 와보지 못한,
북한 땅이 코 앞인
노동당사에 혼자 와서
생각한다는 것이,

저 북녘땅에서 비행기 조정사로
일하고 있다는 외삼촌에게
보낼 수 없는
길고 긴 편지를 쓰게 한다. 


북한(北韓)이라고
한문으로 써진 팻말과
코리아(KOREA)라고 영문으로
써진 저 두 팻말 사이는
고작 얼마의 거리가 될까.

물밀듯이 뒤로 뒤로 후퇴하는
백마고지 전사들의 피비린내가
아직도 물씬 풍겨오는
철원, 초토의 노동당사 !

나는 그 노동당사 앞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무궁화 꽃 한송이 들고
유리창 하나 없는
노동당사 3층 창가에 선다.

연필에 침을 묻혀 꼭꼭
어머니 태산 같은
고향의 그리움을
보낼 수 없는 편지지에,
평생 성경처럼 옮겨 적듯이…

북녘 하늘 환히 보이는
앙상한 뼈대만 남은
노동당사, 하늘 창문에다
보고 싶다...보고싶다... 쓴다. 

보낼 수 없는 편지의 우표는,
저 쿡쿡 태극 마킹 찍힌
태극가창오리 떼들의
소나기처럼 시원한 군무 ! 군무 !

까맣게 하늘에다 
통일의 해원굿을
한판 펼친 태극 가창오리떼들
시퍼렇게 녹이 슨 가시철책을
콕콕 매서운 부리로
끊어 먹으며
일제히 날아오른다. 

아직도 한민족 형제가
총뿌리를 겨누고 있는,
저 경계 없는
넓고 푸른 하늘 속으로
수천 수만의 태극가창오리떼들,

월드컵 그날처럼
함성의 스크럼 짜며 
일렬횡대로
일제히 날아오른다.
#노동당사 #편지 #통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게 뭔 일이래유"... 온 동네 주민들 깜짝 놀란 이유
  2. 2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3. 3 팔봉산 안전데크에 텐트 친 관광객... "제발 이러지 말자"
  4. 4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5. 5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