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대학교에서 편입시험이 열린 지난 18일, 정문 앞에서 편입학원들이 학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플래카드를 매달았다.
권지은
전체 실업률 3.6%. 청년층 실업률 8.1%(2009년 12월 통계). 청년층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두 배 이상이다. 고용상황이 어려우면 20대가 받는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통계를 볼 것도 없다. 오늘 내일 일도 아니다. 주위를 조금만 살펴봐도 취업난으로 심신이 시달리는 20대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유정아(가명, 26)씨는 자신이 꿈꿔왔던 식품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대학생활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학점도 남부럽지 않게 관리했고 높은 토익점수도 얻었다. 그리고 식품관련업종의 마케터, 인턴쉽 등의 경력 또한 충분히 갖췄다. 하지만 언제나 모범생 소리를 듣는 그에게도 취업 장벽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모든 게 점점 꼬여갔다. '취업 어떻게 됐느냐?'는 질문을 첫 인사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 주위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도 피하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취업난에 대한 분노는 자기 자신을 향했다. '내가 이때까지 무엇을 했나',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나' 등을 자문하며 자괴감에 빠졌다. 밥도 맛이 없어졌고, 집 밖으로 나가기도 힘들어졌다.
이때껏 '이태백', '88만원세대' 등 극심한 취업난과 20대의 특성에 대한 말은 무성했다. 지겹도록 유통됐다. 하지만 20대에게는 지겹고도 지겨운, 그렇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 그 자체다. 문제는 이 모든 20대에 관련한 담론들이 20대 스스로의 입으로부터 나온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세대가 그들을 생각했고, 말했고, 분석했다. 왜 20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20대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그들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경쟁 때문에 인간관계도 파탄 난 20대18일 장충동 서울KYC에서는 20대들을 대상으로 한 <2010 변화를 상상하고 창조하는 '체인지 리더'>라는 프로그램의 6번째 강연회(강연자 탁현민 한양대 교수)와 참가자들의 토론이 있었다. 흔치 않은 20대들의 '현실에 대한 수다'를 경청하기 위해서 이들의 토론을 참관했다.
이날 미래의 '체인지 리더'가 될 20대들은 '취업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주제로 5~6명씩 조를 나누어 토론을 진행했다. 기자는 2조의 테이블에 앉았다. 일단 '취업난'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단어를 떠오르는 대로 작은 종이에 자유롭게 적어서 서로의 이야기를 테이블에 올리기 시작했다.
학점, 자격증, 토익, 어학연수 등 '스펙'과 관련된 단어들이 가장 많이 나왔고, 그로부터 20대들이 겪게 되는 4학년 우울증, 목표상실, 열등감, 자존감X, 자살충동, 무기력 등을 적은 종이들도 많이 발견됐다. 물질만능주의, 출세지상주의 등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가치관 또한 문제라고 보고 있는 20대들도 다수였다.
취업난이 부른 20대 사이의 심각한 경쟁적 분위기는 20대의 인간관계와 사회적 소통문제에 있어서도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문성진(22)씨는 '취업난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도구적 인간관계'라고 말했다.
"요즘은 뭐든지 '자기한테 도움이 되냐, 안 되냐'를 경제적으로 따지는 것 같아요. 인간관계에서도 현실적인 이득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 거죠. 그 사람의 인성이나 앞으로의 비전이 아니라 현재 드러나는 것, 스펙, 학벌 등 커리어 같은 거 말이에요. 모두가 사람이 아니라 상품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관계에서도 상품가치가 없으면 버려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