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당직자들이 11일 오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세종시 수정안 규탄대회를 열고 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시킨 이명박 정부를 맹비난하고 있다.
남소연
이번 폭설로 인한 서울의 교통대란은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용한 산기슭에 계시는 MB에게는 신년 폭설이 국운상승의 징표였는지 모르겠지만 정초부터 지옥 같은 출근전쟁에 시달린 서울시민들에게 그 며칠은 고통의 나날이었다. 수십 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1호선을 기다리며, 나는 회의에 늦게 도착한 장관들에게 오늘 같은 날엔 지하철 타라고 훈계한 MB가 얄미웠다.(노무현이 그랬더라면 "또 막말"이라며 대서특필했을 것이다.)
아마 행정수도를 건설해서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모든 정부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갔더라면 신년 대설이 축복이라는 MB의 실언도, 지하철 타고 출근하라는 그의 훈계도 너그럽게 받아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장관들이 차가 막혀 제때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아예 없었을 것이다.
사상 최악의 폭설이 아니라 만약에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서울에 혼란에 빠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휴전선에 배치된 2천문 이상의 장사정포와 다연장 로켓포가 서울까지 정신없이 포탄을 쏘아대면 그에 따른 피해와 혼란은 25cm 폭설의 혼란보다 훨씬 더할 것이다. 아마 그때도 장관들과 참모들은 차가 막혀 정상적인 출근을 못할 것이고 대통령은 대책회의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벙커로 피신해야 할 것이다. 한꺼번에 피난민이 몰리기라도 한다면 명절 때마다 장관을 이루는 민족의 대이동 정도는 비교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그런 곳이다. 어떻게든 하루하루 굴러가고 있지만 어딘가가 약간만 삐끗해도 나라 전체가 대혼란에 빠지고 어이없는 참사가 생길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이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
물론 누군가는 그 속에서 큰 이득을 본다. 대한민국의 돈과 권력과 정보와 인재가 집중되어 있으니 누구라도 자신 또한 그 이득을 보는 무리에 속하리라는 환상을 품은 채 서울로 향한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와 살인적인 집값을 치르고서도 그 환상은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행정수도 건설됐다면 서울에 폭설대란 있었을까하지만 정말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이런 구조와 규칙 자체를 만든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만든 체제에 더 많은 사람들이 편입될수록 자신의 부와 권력은 점점 더 강해진다. 600년 전부터 육조거리를 휘저었던 고관대작들이 그랬고 일제 강점기에는 총독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노무현이 지적했듯이 이제는 그 자리에 양대 보수신문사가 위세 좋게 서 있다. 흔히 얘기하는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 일제와 독재에 빌붙어 대다수 국민들의 고혈을 빨아 먹던 사람들이 여기 속한다. 수도 이전을 기를 쓰고 반대했던 한나라당, 조중동, 지금의 고관 대작들, 그리고 이들에게 뒷돈 대는 재벌들이 그 면면이다. 이 양반들에게는 수도권 집중이 축복이다.
그런 까닭에 수도 이전은 역사적으로도 권력구도의 일대 변화를 의미했다. 묘청의 난이 그랬고 정조의 시도가 그랬다. 노무현은 비굴한 삶을 강요했던 600년의 역사를 청산하자면서 수도이전을 추진했다. 성문법인 경국대전을 들먹이면서도 관습헌법까지 끌어들여야만 했던 헌법 재판관들을 보면 그들의 절박함이 짐작된다.
행정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그렇다면 억지 논리로 수도이전을 위헌 판결한 헌법재판소를 먼저 비판했어야 한다. 청와대와 국회 및 모든 헌법기관들이 죄다 옮겨간다면 그보다 업무효율이 높아질 수 없다. 폭설과 교통대란, 그에 따른 대통령 훈계 따위도 필요 없고 휴전선의 장사정포도 두렵지 않다.
행정수도가 위헌이 된 이 상황에서 일부 정부부처만 세종시로 이전했을 때의 비효율성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비효율성이 생기게 된 근본이유는 헌재의 잘못된 판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지금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하더라도 일정부분의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