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와 국경지대에 위치한 에스토니아의 인구 7천명의 작은 도시 발가에서 발견한 한국식당. 간판 이름은 바로 '호랑이'라는 뜻.
서진석
유럽 변방의 작은 지역인 발트 3국은 전체 면적이 한반도에도 못 미치고 인구도 서울보다 적다. 하지만 그 곳의 시장상황은 나라마다 다른 환경과 조건으로 인해 상당히 차별화돼 있어, 한 국가에서의 성공이 바로 이웃나라에서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단언할 수 없게 만든다. 한국음식만 해도 그렇다. 이 작은 나라들의 경우도 이런 판국이니, 미국과 일본의 잣대에만 비추어 유럽 내에서의 성공을 낙관할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에스토니아] 한국 식당은 많은데, 맛이...발트3국의 제일 북쪽 에스토니아에 사는 내 친구 한 명은 세상에서 인도영화와 한국음식을 제일 싫어한다. 인도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과거 구소련 시절 예술성이나 재미나 검증되지 않는 인도영화가 텔레비전에서 마구잡이로 상영되어 식상해진 이유이다. 한국음식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맛이 없어서이다.
에스토니아는 수도 탈린뿐이 아니라 인구 수 천 명의 작은 도시에서도 고려인들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정도이니 유럽 전체에서도 한국음식이 가장 대중화된 곳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려인들이 한국의 맛을 흉내내 요리하는 수준이라서 현지식도 한국식도 아닌 아주 애매한 음식들이 대부분이고, 게다가 러시아인들의 입맛에 맞춘 중앙아시아 음식이 더 많아 에스토니아 현지인들은 잘 찾지 않는다. 심지어 한국에는 전혀 없는 '이상한 한국요리'들도 상당히 많다.
인도영화의 경우 내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예술성과 재미를 겸비한 볼리우드 영화를 같이 감상하면서 많이 좋아하게 되었지만, 한국 음식의 경우 그 친구를 직접 서울에 데려가 음식을 맛보여주지 않는 한 인식을 바꿔 주기는 아주 어려워 보인다. 에스토니아의 적은 인구 때문인지 에스토니아에는 일본식당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게 보면 대중화 차원에서만 볼때 한국음식은 에스토니아에서 웬만큼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리투아니아] 수많은 일본식당 조리사는 대부분 한국인 또 다른 사례는 한국음식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나 일본음식으로 착각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제일 아래쪽 리투아니아는 현재 공식적으로 한국식당이 하나도 없다. 한때 한국식당이라는 이름을 단 중국식당이 잠시 영업을 하다가 문을 닫은 것이 전부다.
그 외에 수도 빌뉴스를 비롯해 대도시에는 일본음식점이 진작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조리사들이 대부분 한국인들이라는 것이다. (이웃나라 폴란드 바르샤바의 일본식당도 상황이 마찬가지다). 유명한 일본식당에는 이미 한국 주방장들이 포진해 있고, 가끔 한국 가요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주방장을 통해 메뉴에 나와있지 않은 한국음식을 특별 주문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것은 한국음식을 아는 사람에 한해서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본식당에 자주 다니는 리투아니아인들은 김치나 불고기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을 일본음식이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하지만 발트3국 한가운데 위치한 라트비아에는 위 두 가지를 뛰어넘는 아주 고무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곳이 있다. 수도 리가 구시가지 한 구석 작은 골목길에 위치한 라트비아 유일의 한국식당 '설악산'은 2000년에 문을 연 이후로, 수 많은 식당들이 문을 열고 닫은 기간을 견뎌내고 올해 개점 10주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