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할아버지의 '2만원'

83세 한주석 할아버지가 매달 도서관에 가는 이유

등록 2010.01.10 16:29수정 2010.01.1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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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세상의 근본은 '효'이지요. 한주석 할아버지(83)는 귀가 잘 안들려 보청기를 끼고 힘겹게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가슴이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람세상의 근본은 '효'이지요.한주석 할아버지(83)는 귀가 잘 안들려 보청기를 끼고 힘겹게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가슴이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이정민
▲ 사람세상의 근본은 '효'이지요. 한주석 할아버지(83)는 귀가 잘 안들려 보청기를 끼고 힘겹게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가슴이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이정민

"살아오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나눔을 통해 보답하고 싶었어요. 젊은 선생님들의 가르침의 열정과 자라나는 아이들의 배움에 대한 해맑은 모습을 보면 비록 적은 돈이지만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수혜자인 한주석 할아버지는 "없는 살림이지만 나누는 사랑만큼 행복한 인생이 없다"며 매월 지역에 있는 도서관을 후원하면서 남은 삶을 아름답게 보듬어 가고 있다.

 

한 할아버지는 노령으로 인해 일도 할 수 없고 노인연금과 국가 유공자 보조금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두 달에 한 번 부평5동에 위치한 진달래도서관을 찾는다.

 

할아버지는 2만원이 든 흰 봉투를 도서관 선생님께 전해주고 공부하는 아이들 모습을 잠시 둘러본 뒤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을 간병하기 위해 요양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매월 도시락배달을 해주는 경옥씨를 볼 때마다 사람의 따뜻함과 정을 느낄 수 있었지요. 매일 방에만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외로움과 힘듦의 연속이었지만 종교생활과 나눔의 사랑을 통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답니다."

 

관절염을 앓고 있고 고령이지만 할아버지의 말과 행동은 곱고 반듯하였다. 평생 농사를 짓다가 몸이 아파 환갑이 넘은 나이에 도시로 올라온 할아버지는 시골의 순박함과 정겨움을 찾을 수 없는 도시 사람들의 이해타산적인 모습에 너무 안타까웠다.

 

"이웃지간도 삭막해지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어요. 위기라 생각할 때 효도 사상을 일깨워야 합니다. 한국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인해 모든 사회가 공동체 정신으로 뭉칠 수 있었답니다."

 

할아버지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질 못했다. 전쟁을 겪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면서 그저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눔과 사랑의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가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애정의 손길을 놓지 않았다.

 

요즘은 차분히 인생을 돌아보며 경건하게 삶을 보내고 있다는 할아버지는 "청년들이 좀더 우직하게 일을 하면서 스스로의 인생의 가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새해 소망을 전해주었다.

 

"내 평생 반려자인 할머니가 고통 없이 편하게 죽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라서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인간적인 세상을 그려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동행했던 진달래도서관 류지현 사무국장은 "할아버지의 존재만으로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며 "정부가 저소득층 지원대책을 현실적으로 확대하여 복지의 소외가 없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도서관 재정이 어려워져서 후원행사를 9일 열게 되었다"며 "
어린 친구들이 맘껏 공부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후원이 있기를 바란다"고 아쉬운 맘을 전했다.

2010.01.10 16:29ⓒ 2010 OhmyNews
#나누는 기쁨 #함께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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