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종혁아! 일어나

갑작스런 뇌출혈... 남 일 같지 않다

등록 2010.01.09 16:56수정 2010.01.1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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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시골에서 올라온 농사꾼같이 순박하고 힘 좋게 보이는 종혁이. 서른이 넘은 나이에 우리 회사에 들어온 그는 같이 일하며 알게 된 친구다. 몇 년 사이 일하는 부서가 바뀌었지만 점심은 늘 나와 같은 자리에 앉아서 먹는다.


종혁이는 아이들은 커 가는데 오래되지 않은 회사 짬밥 때문에 잔업, 특근이 없으면 기본급 가지고 생활하기 너무 어려워했다. 해마다 임금 인상이 되도 솔직히 일당 몇 천 원 올라봤자 무섭게 올라가는 물가와 떼어가는 세금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혹 잔업 있는 부서에 일할 사람이 없으면 종혁이는 자신이 잔업, 특근 다 할 수 있다면서 남들이 꺼려하는 일을 마다 않고 했다.

종혁이는 월급으로 살기 너무 힘들어서 그동안 몇 번 회사를 그만 두려고 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 마땅한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던 그는 언젠가는 동네신문 구인광고에 방앗간 떡 배달일이 났다고 그 일까지 해 보려고 했다. 

큰 욕심 없고 성실한 종혁이가 먹고사는 문제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 그만둘 걸 고민하면서도 근근이 버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다만 회사를 지금 그만두는 것은 손해라며 같이 일하는 형님들과 그만두지 말라고 말리기만 했다.

종혁이는 작년에 아내가 셋째 아이를 낳고 몇 달 전 아기 돌잔치를 했다. 회사 사람들과 같이 축하해주러 갔는데, 사람들이 종혁이한테 지나가는 말로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애 셋을 어떻게 키우냐…"며 걱정을 했다. 평소에도 말이 없는 종혁이는 그 말에도 별 대꾸 없이 웃어넘기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뇌출혈 남일 같지 않네


종혁이를 포함해 일 하는 부서는 달라도 점심시간에 한자리에 앉아서 나랑 밥을 같이 먹는 네 친구들이 있다. 그때 보이지 않으면 회사 밖 식당에서 밥을 사먹거나 일이 있어서 출근을 못했나 하고 궁금해 한다.

화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휴게실에 들러 신문을 보는데 한 아줌마가 나한테 "형일 씨! 종혁이 얘기 들었어? 종혁이가 뇌출혈로 쓰러졌대"라고 말했다.


순간 내 상식으로도 내출혈로 쓰러졌다는 것은 큰일인데 아니, 며칠 전만해도 멀쩡하던 놈이 쓰러졌다니 참 믿기 어려웠다. '그래! 어쩐지 어제 점심에 밥 먹을 때도 없었고 왜 안보이나 했지.'

아침 조회를 마치고 종혁이 부서에서 일하는 형한테 물어봤더니 진짜 뇌출혈로 쓰러진 게 맞았다. 주말에 집에서 세수하다가 머리가 너무 아프다며 기절해 바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조금 지나 깨어났는데 이때까지는 의식도 있고 말도 하고 그랬단다. 병원에서 경과를 좀 더 지켜보자고 해서 일반병실로 옮기려는 도중에 다시 뇌에 출혈이 생겼다고 한다.

종혁이 아내는 종혁이가 금방 깨어날 줄 알고 월요일에는 시골에 일이 생겨서 못 나간다고 회사에 전화를 했는데 다음날 종혁이가 다시 쓰러지자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있다고 연락한 것이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종혁이 소식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회사 담당자와 노조위원장, 부서팀장이 같이 병원을 다녀오고 나서는 보는 사람들마다 서로서로 종혁이가 어떻게 됐냐고 물어본다. 누구는 눈을 떴다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뇌출혈이 아니라 심근경색이라는 말도 있다. 다들 종혁이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다. 우리 부서 아줌마들도 다들 한 목소리로 "어떡하냐? 나이 사십도 안 된 젊은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서…. 애 엄마와 애들은 또 어떻게 하냐"며 걱정을 한다. 보험은 들어났는지, 애 엄마는 일을 다니는지 모든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다.

"너도 시간내서 가 봐"... 형들의 뜨거운 마음

며칠 전에 한참 일하고 있는데 옆 부서에서 있는 남수 형이 나한테 와서 힘없이 얘기한다.

"야! 어제 일 끝나고 길수하고 종혁이한테 갔다 왔어."
"그래! 갔다 왔어? 나랑 같이 가자고 하지. 종혁이는 봤어?"
"어! 중환자실 면회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5분정도 보고 나왔는데 코에 호스 꼽고 그냥 누워있더라, 아직 의식은 없고…."

사람들이 다들 면회까지 갈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면회 가도 의식 없이 누워있는 종혁이한테 뭘 할 수도 없고 조금 지나서 깨워나면 한번 가봐야지 그랬는데 남수, 길수 형들이 갔다 온 거다. 남수 형은 "나도 종혁이 보니까 눈물이 나오려고 하더라. 길수랑 오만 원씩 걷어서 종혁이 집사람한테 십만 원 주고 왔어. 너도 시간 내서 가보라고…."

참! 남수형 말을 듣고 난 진짜 할 말이 없었다. 날마다 점심에 밥을 같이 먹는 친구라면서 친구가 쓰러졌다는 얘기를 듣고도 우선 병원에 찾아가 봐야 하는데 솔직히 바쁘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재보고 그러지 못했다.

두 형들이 누가 나서기 전에 먼저 병원에 가서 그것도 어려운 형편에 둘이서 십만 원이나 주고 왔다는 말에 난 창피하기도 했지만 형들이 참 대단하고 너무 고마웠다. 진짜 종혁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형들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종혁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형들은 그랬을 거다.

훌훌 털고 일어나 함께하길 기도해

주말에 같이 일하는 형하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종혁이를 만나고 종혁이 아내를 봤지만 별로 힘이 되지 못해 미안했는데 그 뒤로 종혁이 부서 사람들과 노조 풍물패, 신우회 모임도 나서서 도움을 줬다. 노조에서는 연말에 전체 사원들과 종혁이 돕기 모금을 했고 회사도 같이 성의를 표했다.

중환자 대기실에 있는 아내와 두 딸아이, 이제 막 두 살 된 막내 아이를 두고 종혁이는 아직도 의식 없이 누워만 있다. 종혁이가 쓰러지기 얼마 전에 집주인이 전세금 오백만 원을 올려주라고 했단다. 그 고민도 종혁이한테는 무거운 짐이 됐을 것이다.

종혁이 부서 팀장은 전세금 얘기를 듣고 "내가 종혁이를 일이 많은 다른 부서로 옮겨서 한
푼이라도 더 벌게 했어야 하는데…"하며 뒤 늦은 아쉬운 소리를 해본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종혁이 큰딸아이 이름이 하은이다. 풀어쓰면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이다. 며칠 남지 않은 2009년 소의 해가 가기 전에 힘 좋고 우직한 소를 닮은 종혁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라도 훌훌 털고 일어나 2010년 새해를 맞을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덧붙이는 글 | 장형일 신한일전기 노동자입니다. 이 기사는 노동세상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장형일 신한일전기 노동자입니다. 이 기사는 노동세상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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