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없어뭐든지 하쿠나마타타! 그들의 긍정성
박진희
내가 다녔던 여행지는 주로 '고생'을 감수해야 하는 나라들이었다. 참 이상하게도 그런 나라에만 마음이 끌렸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은 왠지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도를 펼치면 항상 캄보디아, 페루, 볼리비아, 케냐, 탄자니아 이런 나라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난한 나라, 고생스런 나라(물론 전부를 가보진 않았지만, 여러 의견을 통합해본 결과)에 가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no problem"과 "don't worry"이다.
온통 불편한 것투성이인 나라에서 틈만 나면 그 나라 사람 입에서 튀어나오는 '문제없어' '걱정 마'라는 말에 처음엔 적응이 안 되서 화도 많이 냈었다.
#1. 혹시 '문제없어'라는 말이 '안녕'이라는 의미가 아닐까'no problem'이 혹 인사말은 아닐까?
그렇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 '문제없다'는 말을 참 쌩뚱맞은 상황에서 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문제없다', '걱정 마'라는 말을 상대방을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말로 많이 쓴다. 누군가가 실수하거나 큰 걱정거리가 있을 때, 그러니까 주체는 '상대방의 문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지'가 잘못해놓고 '지'가 '문제없다'고 말한다. 기차가 연착이 되어도, 밥이 늦게 나와도, 물을 내게 엎질러도 언제나 '문제없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긴 버스여행 중에 화장실을 들르기 위해 잠깐씩 휴게소에 선다. 우리나라 같으면 '15분'이라는 시간약속을 하고 그것을 칼같이 지킨다. 여긴 예정 약속도 없다. 그러면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혹시나 자기를 버려두고 갈까 봐 총알같이 화장실을 다녀온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는데 버스는 갈 생각 안 한다. 참고 인내하고 또 참다가 화를 낸다. 그러면 돌아오는 말이 이거다.
"노프라블럼! 버스운전기사가 이 동네 친구가 있어서 얘기 좀 하다가 온대."
우리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크나큰 문제가 이곳에서는 하나도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 아무도, 정말 아무도 화내지 않는다는 거다. 아무도 화내지 않는데 혼자 열받고 항의하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한국사람이다.
케냐에 있을 때, 동행했던 조흭이 말라리아 증세를 보여서, 신종플루 체크도 할 겸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피를 뽑기 위해 6시간을 기다렸다. 역시 그때도 모두들 묵묵히 그냥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답답해 속이 터진 우리만 번갈아가며 "피만 뽑으면 되는데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 항의했다. 돌아오는 답은 "노프라블럼, 기다려"였고 결국 순서대로 순리대로 천천히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피를 뽑을 수 있었다.
#2. 에브리데이, 에브리바디, 하쿠나마타타'하쿠나마타타'는 스와힐리어(아프리카 공용어)로 문제없다는 뜻이다. 아마도 이 사람들이 잠보(안녕) 다음으로 많이 쓰는 말일 것이다. 이런 문화에 적응하는 건 사실 쉽지 않았다. 1분 1초를 다퉈야하는 서울에서 살다가, 뭘 해도 기본 몇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 게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화를 내도 변하지 않는 상황을 뼛속까지 느끼고부터는 그렇게 '분명 문제가 있지만 문제없는 것'들에 대해 천천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떨 땐 이 사람들이 너무 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