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야당의원들이 지난 12월3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의장 단상 주변을 둘러싸고 "김형오는 사퇴하라","불법 날치기 사죄하라"는 등 구호를 외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항의를 하고 있다.
유성호
2009년은 용산참사에서 시작하여 다수당의 예산 날치기 통과로 끝을 맺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위기가 겹치면서 제반 민주주의의 위기로 점철된 한 해였다. 2008년과 비교할 때 2009년은 더욱 암담했다.
2008년에는 5~6월 촛불집회를 통한 대중들의 직접 참여 민주주의가 분출하면서 새로운 운동의 흐름이 제도정치의 파행을 막아줄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고, 이것이 정부여당의 정책에 일정한 변화를 가하기도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대운하 포기, 악어의 눈물에 가깝지만 일정한 친서민 정책(대학생 학자금 대출, 미소금융, 보금자리 주택)의 추진 등은 2008년의 대중운동이 제도정치에 가한 충격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9년은 행정권력과 입법권력, 지방권력을 장악한 보수 우위의 제도정치를 흔들 수 있는 이렇다 할 징후가 없었다.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기는 했으나, 이명박 정부의 불도저식 정책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9년 동안 벌어진 용산참사와 쌍용사태를 비롯한 억압적 계급정책, 미디어법 강행 처리와 언론사 장악 기도, 세종시 수정 추진, 4대강 사업 추진, 집회·시위·결사의 자유 침해, 노무현과 김대중 전(前) 대통령 서거, 노동법 및 예산안 날치기 처리 등의 제반 사건들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제반 조건들이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진보세력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급속하게 후퇴하고 있다고 진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0~50%까지 치솟고 있고 한나라당의 지지율 역시 나머지 야당 전체의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높게 나오는 작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당혹스러운 역설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조장한 세력이 민주사회의 주권자인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우리 국민들, 특히 부동층 유권자들에게는 별다른 대안적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이 민주적 의식이 불철저하다는 점은 알고 있으나, 민주당이나 여타 진보정당을 대안적 선택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지방선거의 해 2010년을 바라보는 두 가지 입장정치과정의 기본 요소는 정당, 유권자, 선거제도다. 2010년에 치러질 지방선거의 선거제도가 변경되지 않고 현재 유권자의 지지도 추이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한다면, 정치과정에 변화를 가져올 유인은 정당에 있다. 통상적으로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는 것이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관행이므로, 한나라당으로서는 광역과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각각 40% 정도만 승리해도 크게 선전하는 셈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광범위한 대중저항과 같은 우발적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정당, 유권자, 선거제도가 고정된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충분히 40% 이상의 지역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권자는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해 통치자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고, 주권자의 명령을 하달한다.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게 민주주의 후퇴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2008년, 2009년의 우울한 정치는 2010년에는 더욱 암울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2010년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신보수주의 우파 정치가 더욱 심화될 것인지, 아니면 일정하게 제동이 걸릴지가 결정될 것이다. 현재의 여러 가지 상황적 조건을 고려해 볼 때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주요 변수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각 정당의 선택이다.
지방선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거칠게 표현해서 크게 두 가지로 분기된다. 하나는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을 염두에 둔 민주대연합론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민주당)을 제외한 진보대연합론이다. 전자는 정권교체와 집권가능성을 염두에 둔 최소강령의 최대연합 전략이라면, 후자는 진보세력의 독자적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최대강령의 최소연합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09년 재보궐 선거가 진보세력의 최소연합 전략이 부분적 성공(울산 북구)과 부분적 실패(안산 상록을)를 한 사례였다면, 다가오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세력이 어떠한 방식의 선거전략을 채택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민주대연합과 진보대연합, 복잡한 손익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