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세계경제중심이었던 뉴욕도 경기침체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뉴욕의 한 흑인이 거리에서 주운 재활용품을 활용해 연주를 하고 있다.
백찬홍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2월 31일 뉴욕 한인사회의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지난해 2월 빚문제로 동반 자살한 롱아일랜드에 거주하는 김아무개씨 부부의 사례를 자세히 다루면서 뉴욕총영사관의 자료를 인용해 최근 경기침체로 뉴욕거주 한인들의 자살 건수가 2007년 5건, 2008년 6건에서 2009년 15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보도했다.
뉴욕총영사관 측은 NYT의 보도에서 실제 한인들의 자살 건수는 알려진 것보다 두 배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현지 한인언론인 <뉴욕 한국일보>는 최소 36명의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뉴욕한인들의 자살률이 높은 것에 대해 현지 전문가들은 한인사회가 전통적으로 체면과 위신을 중요시하는 상황에서 경제위기로 인한 빈곤과 사회적 실패가 극심한 좌절감을 안겨주었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 외에도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저지, 로스앤젤레스(LA), 애틀랜타, 사카고 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A한인방송인 <라디오 코리아>는 부동산 폭락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LA지역에서 한인 경제의 젖줄인 의류도매시장의 도산이 줄을 이으면서 처신을 비관한 업주들이 자살해 한인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고 보도했다.
LA 카운티 검시소도 지난해 9월 중순 발표한 통계에서 2009년 8월 말까지 한인 23명이 자살한 것으로 집계했는데 이는 한인 사망자 3명 중 1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속적인 장기불황에 가정불화 등이 더해지면서 생활고와 처신을 비관하는 한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살이 끊이지 않자 한인사회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자살예방세미나를 갖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 같은 미국 한인들의 연쇄자살은 한인사회의 어두운 면과 미국의 쇠퇴를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 현재 미국 경제는 오바마 정부의 구제 금융으로 조금씩 회복되고는 있으나 미국이 이전처럼 유일한 초강대국의 지위를 계속 누릴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던 달러는 점점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으며 현재 같은 추세라면 빠르면 20년 내에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미국의 위기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까지 100여 년간 전 세계를 지배한 영미자본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체제가 수명을 다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몰락은 레이건과 대처를 우상처럼 여기며 이름만 번지지르할 뿐 재벌이나 소수 기득권층에만 유리한 이명박 정부의 각종 선진화 정책에 타격을 주고 있다. 월가를 모델로 금융자유화를 추진했던 정책도 주춤하고 있으며 한국식 의료보험 체제를 추진하는 오바마 정부의 의료개혁 때문에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도 여론의 눈치를 보며 도입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 믿는 국가들이 잘 살았다? 한국정부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 숭미사상에 물들었던 한국교회의 미국 찬양 분위기도 점차 수그러들고 있다. 금융위기 전만 해도 대부분 한국 개신교 목사들은 미국이 기독교를 믿어서 잘 살게 되었다는 다소 황당한 얘기를 퍼뜨리고 다녔다. 게다가 대전 J침례교회 장모 목사는 공개적으로 "불교 믿는 나라들은 가난하다", "스님들 쓸데없는 짓 말고 예수 믿어라"라고 발언해 불교계의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개신교 목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독교를 믿은 국가들이 잘 살았던 것일까?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오히려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4세기 초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열된 후 1세기만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했고 동로마제국은 서서히 국력이 피폐해져 사라센제국과 오스만 터키의 공격으로 무너졌다.
기독교가 이른바 중세 천 년간 암흑기를 보내는 동안 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듯이 이슬람제국은 우마이야·압바스·파티마조로 이어지면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그리스 철학과 천문학, 의학, 수학 등을 유럽에 전파해 르네상스시대와 유럽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비슷한 시기 현장·법장·혜능 등 고승들이 출현했던 당나라는 도교와 불교를 숭상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보·이백·백거이·한유·유종원 같은 위대한 문인을 배출하는 등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문명시대를 열었다.
이어 등장한 송나라는 유교를 기반으로 주자학을 비롯한 학문 분야에서 이름을 떨쳤고 북방의 몽골족은 유라시아 일대를 제패하면서 이슬람과 봉건시대에 머물렀던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도 했다. 한편 인도에서는 불교와 힌두교가 종교사에 빛나는 수준 높은 논쟁을 벌이고 있었고 인도차이나의 크메르족은 주변국을 병합하면서 불교와 힌두교 양식을 조합해 앙코르와트를 만들었고 아프리카에서는 가나·말리·악숨(에티오피아)·짐바브웨 지역에 제국이 건설되는 등 세계 여러 곳에서 당시 유럽을 넘어서는 문명국가를 건설했다.
대부분 기독교 국가인 유럽이 로마제국 이후 세계사에 이름을 내밀기 시작한 것은 15세기말 콜롬부스와 바스코 다가마가 각각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대륙에 도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것도 명나라의 정화제독이 이끄는 대선단이 아프리카에 도착한 지 반세기가 지나서 였다. 유럽이 이슬람세계나 중국을 넘어선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였고 미국은 그 당시 겨우 젖을 땐 초보국가에 불과했다. 중고교시절 세계사가 서양사 중심으로 된 것을 감안해 객관적으로 볼 때 유럽의 기독교국가가 세계사에 주역이 된 것은 2~3백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은 역사상 유래 없는 잔인한 방식으로 식민지 원주민을 착취했고 20세기에는 2번에 걸친 세계적 차원의 전쟁을 일으켜 수천만 명이 사망하는 등 엄청난 재앙을 불러왔다. 세계대전의 최종승자인 미국 역시 1백년도 넘기지 못하고 유구한 역사의 전통대국인 중국에게 패권을 넘겨주고 있다. 이러한 자명한 사실이 있음에도 개신교 목사들이 기독교 국가는 무조건 잘 산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기본적인 역사지식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은 도를 넘어서기도 했다.
미국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