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31일 아침, 우리 마을 풍경. 눈길을 걸어가는 할머니 목적지가 어디인지 무척 궁금했다.
조종안
기축(己丑)년 마지막 12월31일 아침에 눈을 뜨니까, 기상청의 대설주의보 예보대로 많은 눈이 내렸는데, 세상이 온통 흰색 화장품으로 화장한 것 같았고, 테라스에는 발이 빠질 정도로 쌓여 있었다.
화창한 날씨에 가시거리가 길어 평소보다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산야는 한 폭의 동양화처럼 다가왔는데 설경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점심때 도착하는 손님들을 맞이하려면 청소도 하고, 실내 공기도 환기시키고, 테라스와 계단에 쌓인 눈도 치워야 했기 때문.
곧바로 창문을 모두 열어 젖히고, 청소를 시작했고, 테라스와 계단에 쌓인 눈도 치웠다. 다섯 살 때 맹장수술을 하면서 척추에 주사를 놓는 바람에 허리를 오래 구부리거나 무리가 가는 일은 못한다. 하지만, 상쾌한 마음으로 청소도 하고 눈도 치웠다.
눈을 치우면서도 12시쯤 도착한다는 막내 누님과 매형이 못 올까 봐 걱정되었다. 전날 내린 폭설로 도로가 빙판길이 되어 아내가 퇴근하지 못해 혼자 지냈기 때문이었다. 해서 평택 부근은 도로 사정이 어떠한지 전화해보고 싶었으나 "길이 너무 미끄러워 통행이 어려우니까 다음으로 미루자!"고 할까 봐 궁금하지만,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정오가 넘었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어 불안감이 밀려왔다. 셋째 누님이나 동생에게서라도 어떻게 되는 거냐며 전화가 와야 되는데 아무 연락이 없어 더 답답했다. 막내 누님이 오면 함께 먹으려고 밥도 먹지 않고 기다렸는데 1시가 되어가도록 연락이 없어 혼자 먹을 수밖에 없었다.
밥을 거의 먹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가웠다. 올 사람은 누님들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밥을 먹다 말고 뛰어나갔더니, 셋째 누님과 막내 누님, 형수가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왔다. 차 청소를 하는 막내 매형에게 다가가 고생하셨다고 하니까 눈이 많이 내려서 시속 30km로 왔다고 했다.
건강과 새해 소망을 빌었던 송년회 누님들이 음식을 만드는 동안 나는 연말에 모이면 먹으려고 남겨놓았던 알밤을 구워 나눠주었더니 맛있다며 모두 먹어 치웠다. 조금 있으니까 형님과 동생이 도착했다. 동생은 연말 모임이 여섯 곳이나 되는데 여기로 왔다면서 형제애를 과시했다.
이어 조카 부부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왔고, 이어 2009년 가족 송년회가 시작되었다. 술을 한 잔씩 따라 높이 들고 형님의 선창에 따라 "잘 먹고 잘 살자!"를 외쳤는데, 형제가 모이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형제의 소중함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조카며느리는 "저는 처음엔 삼촌들이 자주 모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차츰 형제들 모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쟤네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쟤들이 크면 보고 배우고 느낀 대로 하지 않겠어요"라며 '형제들 모임'의 중요성을 에둘러 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