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새 CEO 줄줄이 낙마... KB에선 무슨일이

[분석] 부활하는 관치망령, 쪼그라든 민간자율

등록 2010.01.01 10:21수정 2010.01.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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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건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건물.오마이뉴스 이종호

새밑인 지난 12월 31일 계속되는 강추위 속에 금융계는 더욱 꽁꽁 얼어붙었다. 국내 최대은행인 KB국민은행의 지주회사인 KB금융지주의 강정원 회장 내정자가 결국 낙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황영기 전 회장의 석연치 않은 퇴진 이후 석달여 만이다.

금융권은 술렁였다.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의 CEO가 회사 내부 문제가 아닌, '외풍'으로 연달아 낙마하는 현실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금융계는 과거 외환위기 이전의 관치금융 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라며 씁쓸해했다.

금융계에서는 지난 10월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사퇴 이후, KB사태 등을 겪으면서 '관치금융의 망령이 되살아났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물론 일부에선 현행 금융회사들의 사외이사제도에 일부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정부의 관치를 불러올 정도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번 KB사태를 두고 국민은행노동조합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발이 커지는 등, 정부의 관치금융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친정부 인사 심는 '보이지 않는손'...교묘한 'MB식 관치'

현 정부는 그동안 정권 출범 이후 금융회사와 연구기관에 직간접적으로 친정부 성향의 인사를 심는 데 주력해 왔다. 금융 공기업은 말할것도 없고, 우리은행 등 정부 지분이 많은 금융회사는 이명박 정부의 측근인사들로 물갈이됐다.

특히 민간 금융회사들이 출자해 만든 대표적인 금융 연구기관인 금융연구원장까지도 교체됐다. 물론 이동걸 전 원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그 역시 금융당국의 집요한 사퇴 압력을 받았다. 이 전 원장은 작년 2월 물러나면서 "(정부가) 씽크탱크가 아니라 '마우스'탱크를 원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현 정부 출범 직후 2008년 3월에 후보인사추천위원회의 공모절차를 통해 선출됐다. 당시 이사장 경쟁에 뛰어들었던 L씨는 현 정부의 금융계 측근인사로 알려졌지만, 후보추천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금융계에선 이 전 이사장에 대해 이른바 '꽤씸죄'가 나돌기 시작했다. L씨는 현재 시중 대형금융그룹의 수장을 맡고 있다.

이 전 이사장은 이후 갑작스런 검찰의 압수수색과 함께 감사원의 감사를 받아야했고, 금융감독원의 검사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별다른 비위 혐의를 찾지 못하자, 정부는 작년 1월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버렸다. 공기업 민영화를 앞세운 현 정부가 되레 민간기업을 공기업화 시킨 것이다. 결국 이 전 이사장도 작년 10월 물러나면서 "금융당국의 집요한 협박과 함께 주변 인사들까지 동원한 사퇴 압박을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큰 파장을 낳기도 했다.


최근 KB금융지주 회장자리에서 물러난 황영기 사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금융당국은 정권이 바뀐후 황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 시절 1조6000억원대의 파생상품 투자손실을 봤다면서 올해 들어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내렸다.

황 전 회장이 우리은행에 재직할 당시에 재정경제부 스스로 파생금융상품 투자를 장려했고, 금융당국 역시 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2007년 6월 감독 당국의 우리은행 종합검사 때도 책임을 묻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정부 인사로부터 대놓고 어떤 지시를 받는것 보단, 간접적으로 주변 인사의 말을 통해 전해주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두고 'MB식 신(新)관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궁지로 내몰린 강정원 내정자도 결국 사퇴의 길로

 31일 전격사퇴한 강정원 전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자료사진)
31일 전격사퇴한 강정원 전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자료사진)
이같은 'MB식 신관치'는 강정원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황 전 회장이 물러난 후, KB금융은 후임 인선에 착수했다. 금융당국 쪽에선 KB금융쪽에 사외이사제도 개편이 이뤄진 후인 올해 3월께나 차기 회장을 뽑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하지만 KB금융에선 올 1월7일 임시주총을 열어 차기회장을 뽑기로 하고, 사외인사들 중심으로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었다. 게다가 현 정부인사로 꼽히는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대표와 이철휘 자산공사사장이 불공정 경쟁 의혹을 제기하면서, 전격 사퇴해 버렸다.

이들 두 후보가 사퇴하자, 감독당국에선 강정원 후보자에게도 사퇴를 권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강 후보자는 면접을 강행하면서 사외이사들로부터 차기 회장으로 내정되기도 했다. 대신 이 과정에서 금감원은 KB 금융 이사회의 녹취록 뿐만 아니라 임직원 컴퓨터 조사와 강 후보자의 운전기사와 차량운행 일지까지 조사하면서 이른바 '보복검사' 논란이 일었다.

결국 강 내정자 역시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감독당국의 외압에 불복해 회장으로 정식 취임할 경우, 1월 중순께 예정된 금감원의 KB은행에 대한 종합검사 강도는 크게 높아질 것이 뻔했다. 물론 조사과정에서 은행과 지주회사 구성원의 고통도 그만큼 커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강 내정자는 31일 내놓은 사퇴의 변에서 "KB금융을 아시아 제일의 금융그룹으로 키워보겠다는 순수한 일념으로 면접에 응했으며 회장 공백기를 최소화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절차가 불공정했다는 등 비판 여론이 있는 현실에서 더 이상 회장 선임 절차에 참여하는 것은 KB금융과 주주, 고객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회장 내정자 지위를 자진 사퇴하고자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정부가 단 1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은 민간기업의 CEO 선출 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현행 법률은 어디에도 없다"면서 "이를두고 금융감독권의 정당한 행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작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이날 성명을 통해 "금융당국의 관치적인 행태는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킨다"면서 "이는 다시 금융시장의 장기적인 발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혼돈과 혼란의 KB는 어디로... 당분간 경영전략 차질 빚을 가능성도

당장 KB의 혼란과 혼돈은 새해 벽두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회장 인선 파문으로 인해 임직원 인사가 줄줄이 미뤄지면서, 주요 의사결정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KB금융은 최근 2010년 경영전략 방향에 대해 '균형성장을 통한 그룹 가치 극대화'에 두고 증권사 등을 인수해서 빠른 시일 안에 지주회사를 정식 궤도에 올려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장 선임 절차가 다시 시작되면서 이같은 전략은 좀더 뒤로 미뤄지게 됐다.

KB국민은행의 한 임원은 "이미 다른 은행들은 새해부터 영업을 강화하는 등 경쟁력을 키우는데, 연말인사 등이 미뤄지면서 직원들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사가 늦어지면서, 자칫 금융권 기업인수 합병 등 주요한 정책결정도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면서 "게다가 1월에는 금감원 종합검사까지 겹쳐서 이래저래 쉽지않은 새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노동조합도 정부의 관치금융 의혹에 대해 검찰에 고발하는것을 비롯해 금감원의 항의방문과 장외투쟁을 준비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KB금융 이사회는 조만간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다시 열어 차기 회장 선임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사회는 올 3월 정기주총까지는 새 회장 선임 작업을 마치겠다는 입장이다.

관치금융의 부활 논란속에 국내 최대 금융회사인 KB 금융이 어떻게 혼돈과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강정원 KB국민은행장 #관치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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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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