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대학들은 2년(4학기) 이상 강의를 맡아 온 강사 중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 않은 강사를 대상으로 계속해서 해고했습니다. 영남대에선 시간강사 100여 명을 이 같은 이유로 해고했으나, 비정규교수노조의 반발이 거세지자 강사들의 강의시간을 주당 5시간 이내로 제한한 희한한 대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주당 근무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는 사용기간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조항을 교묘히 적용한 것입니다. 지난 2003년 고등법원 판례에 따르면 대학 시간강사의 경우 근로시간을 일반 노동시간의 3배로 산정한 바 있습니다. 강의 준비시간과 연구활동 등을 감안한 판단입니다.
각 대학들이 주당 강의시간을 5시간 이하로 제한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다시 긴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대학 측과 강사들 간 갈등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강사들의 집단해고로 몸살을 앓았던 영남대가 또 다시 격랑에 휩싸여 있습니다.
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 분회는 지난 23일부터 파업을 계속하며 학생들의 2학기 성적 입력을 거부, 29일까지로 돼 있는 성적 정정 기한을 넘겼습니다. 노조는 올 6월부터 대학 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벌였으나 시간당 강의료 1만1천원 인상, 강의준비금 5만원 인상 등 노조의 요구를 대학이 거부해온 때문입니다.
최근 경북지방노동위원회가 '강의료는 동결하되 강좌당 강의준비금을 8만5천원 인상하라'는 중재안을 냈으나 대학 측이 수용하지 않아 파업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에 영남대 시간강사들은 "엄동설한 추위를 뚫고 대학 측의 탄압을 넘어 반드시 승리 할 것"이라며 지난 21일 총파업출정식을 갖고 결연한 투쟁의지를 내비쳤습니다.
그러나 대학 측은 "학생 등록금 동결로 교직원 임금이 동결됐는데 현재 전국 지방대 중 최고 수준인 시간강사 강의료 등을 인상할 명분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올해 교직원 호봉승급분과 연금보험 가입비 등을 합치면 적잖은 임금 인상 효과가 있기 때문에 임금 동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해 팽팽히 맞선 상태입니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요.
"시간강사 6320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단 2명뿐?"
대학은 전체 강의의 절반에 육박하는 시간을 시간강사에게 배정하는 등 시간강사에게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저임금에 장시간의 노동을 요구하면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해고시킬 수 있는, 인력 구조조정에 관한 절대적인 우위를 띄고 있으면서 절대적 약자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판단이 설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많은 대학 시간강사들은 영남대 수준에 못 미치는 대우를 받으면서 학생과 강의실을 지키고 있다는 겁니다. 더구나 이제 강의가 없는 긴 겨울 방학이 시작됐습니다. 강사들에게는 다시 춥고 배고픈 시절이 왔습니다. 내년 3월 새 학기 강의가 시작될 때까지 빈궁기를 잘 극복해내야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년부터는 올해처럼 시간강사들이 전국적으로 집단 해고되진 않을 전망이라는 소식에 위안을 삼아봅니다. 앞으로는 대학 시간강사와 연구원의 근무기간이 2년을 넘어도 비정규직으로 계속 일할 수 있게 됐다는 입법 예고안이 발표됐습니다.
노동부는 지난 23일 이 같은 내용의 비정규직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대학 시간강사나 연구기관 연구원 등을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게 골자지만 강사들의 교원지위 회복과는 요원한 일입니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는 4년제 대학 153곳과 전문대학 122곳의 시간강사를 대상으로 지난달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상당수가 고용불안을 겪었으며 시간강사들도 대부분 기간제한 대상에서 빼줄 것을 희망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비정규직법이 적용되는 시간강사 6320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단 2명뿐이었고 2312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을 주고선 이제 와서 땜질식 처방이라니 참으로 가증스럽기만 합니다.
새해에는 분열, 갈등 해소되고 '강구연월' 시대 열리길
<교수신문>을 보니 2010년 새해의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강구연월'(康衢煙月)이 선정됐습니다. 각 대학 교수,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지식인 2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강구연월'이 새해 사자성어로 뽑혔다고 하는군요.
'강구연월'(편안 강, 네거리 구, 연기 연, 달 월)이란 '번화한 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나타낸 말로, 태평성대의 풍요로운 풍경을 묘사할 때 쓰이는 뜻이라고 하는군요. 이 말은 중국 요 임금 시대에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노래한 동요 '강구요'(康衢謠)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의 '중니'편에 보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된 요 임금이 민심을 살펴보려고 미복 차림으로 번화한 거리에 나갔는데, 아이들이 "우리 백성을 살게 해 주심은 임금의 지극한 덕"이라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강구연월'을 희망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단국대 김상홍 교수(한문학)는 "지도층은 요 임금처럼 국민에게 강구연월의 세상을 만들어 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새해에는 분열과 갈등이 해소되고 강구연월의 시대가 열리길 기대한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습니다.
'강구연월' 외에 '편안할 때 위태로울 때의 일을 생각하라'는 말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현실에 안주해선 안된다'는 뜻의 '거안사위'(居安思危), '때를 벗기고 잘 닦아 빛을 낸다'는 의미의 '괄구마광'(刮垢磨光) 등도 새해 사자성어 후보로 꼽혔습니다. 지난 한해 민심이 얼마나 흉흉했으면, 분열과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이런 사자성어들이 등장했는지를 읽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이에 앞서 <교수신문>은 올 한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유한 사자성어로 '바른 길을 좇아 정당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 억지로 한다'는 뜻의 '방기곡경'(旁岐曲逕)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경인년(庚寅年) 새 아침이 밝아 옵니다. 모든 시간강사님들, 올 한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경인년 새해에는 호랑이의 용맹한 기운을 받아 부디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을 이루시고 더욱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2009.12.31 17:50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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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에 무더기 해고... 2009 시간강사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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