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를 옮겨 다니는 메뚜기식 '무허가 카지노'를 운영한 경우 관광진흥법위반죄가 아니라 도박장개장죄를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K(37)씨는 공범들과 함께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L호텔 객실에서 바카라 카지노 테이블 1대와 칩 등을 갖춰 놓고 찾아온 손님을 상대로 바카라 게임을 하도록 하면서 수수료를 취득하는 방법으로 하루 평균 200만원의 수입을 올리다 적발됐다.

이로 인해 K씨는 관광진흥법위반과 도박개장 혐의로 기소됐고,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장용범 판사는 지난 7월 K씨에 대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8월을 선고했다.

관광진흥법 제3조에 따르면 카지노업이란 전용영업장을 갖추고 주사위, 트럼프, 슬롯머신 등 특정 기구를 이용해 우연의 결과로 특정인에게 재산상 이익을 주고 다른 참가자에게 손실을 주는 행위 등을 하는 것을 말한다.

카지노업를 개장하려면 △330㎡ 이상 전용영업장 △1개 이상 외국환 환전소 △카지노업 영업종류 중 네 종류 이상 영업할 수 있는 게임기구 및 시설 등을 갖춘 뒤 문화체육관광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K씨는 "전용영업장을 갖추지 않았고, 일정기간·일정장소에서 계속 영업을 한 것이 아니어서 관광진흥법위반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항소했으나, 서울중앙지법 제8형사부(재판장 이민영 부장판사)는 지난 9월 K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관광진흥법에 의해 처벌되는 카지노업은 허가 요건을 갖춘 카지노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카지노업의 경우 그 특성상 단속을 피하기 위해 단기간 영업 후 장소를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형태의 카지노업도 처벌하기 위한 취지"라며 "따라서 단기간 영업을 목적으로 카지노업을 했더라도 관광진흥법위반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따라서 피고인의 카지노업이 일정기간·일정장소에서 계속적으로 경영된 것이 아니어서 관광진흥법의 카지노업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리오해 주장은 이유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불법 카지노를 운영한 혐의(관광진흥법위반, 도박개장)로 기소된 K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환송했다고 29일 밝혔다. K씨의 혐의가 관광진흥법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관광진흥법이 전용영업장 등 엄격한 시설과 기구를 갖춘 경우에만 카지노업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무허가로 카지노업에 대해 도박개장죄보다 중형에 처하도록 규정한 것은, 전용영업장에 준하는 시설과 기구를 갖추고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카지노업을 한 경우 관광진흥법위반죄로 엄하게 처벌하고, 전용영업장에 준하는 시설과 기준을 갖추지 못한 채 도박을 하게 한 경우 도박개장죄로만 처벌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어 "그리고 전용영업장에 준하는 시설과 기준을 갖추었는지 여부는 기구 및 시설의 규모, 영업장의 위치 및 면적, 영업기간, 종업원들의 역할 분담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한 달 동안 다른 공범들과 호텔 객실 등 장소를 옮겨 다니며 조립식 탁자를 놓고 총 6회에 걸쳐 카지노영업을 한 것에 불과하고, 영업장소마다 짧게는 1일 길게는 4일 정도씩 영업을 했던 점에 비춰 보면 비록 환전 및 달러를 담당하는 공범을 따로 뒀다고 하나, 피고인이 전용영업장에 준하는 시설과 기준을 갖추고 카지노영업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관광진흥법상 '카지노업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카지노업을 경영한 자'라는 구성요건의 해석 및 적용을 그르친 것으로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따라서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하기 위해 원심 법원으로 돌려 보낸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