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찌 보면 곰이 자신의 제왕을 선언하는 것 같은 이 녀 석은 여섯 마리 중 단연 팔팔하다.
김수복
"토끼 풀 먹는 것을 보고 있음 하루가 한 시간 같어."어머니가 예전부터 토끼를 참 많이 좋아하셨다. 그 영향인지 나 또한 토끼들의 오물오물 아삭아삭 풀 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그 무엇도 바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 집에 이사를 들자마자 한 것이 토끼집을 짓는 일이었다. 딴에는 토끼들이 자유롭고 활발하게 뛰어다니도록 한다고 투자를 제법 했다. 넓이 1,5미터에 길이 12미터, 여기에 말뚝을 박고 철망을 친 다음 토끼 4마리를 풀었다.
깡총거리는 녀석들을 보며 흐믓흐믓 미소를 짓는 꿈같은 날들을 압류라도 하듯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린 토끼들이 어느새 자라 새끼를 낳았는데 족제비가 찾아오고 들고양이들 또한 비린내를 맡았다. 아직 털도 안 난 녀석들이 핏방울만 몇 점 남겨놓은 채 사라지는가 하면 털이 나고 덩치가 커진 뒤에는 물어 뜯겨 죽은 채로 철망 사이에 끼여 있기도 했다.
그때부터 족제비들과의, 들고양이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니다. 전쟁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의 처참한 패배로 끝을 보고 말았다. 육 개월여 동안 갖은 방법을 써 보았지만 내 능력은 야생동물들의 생존본능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일찌감치 토끼장을 사과상자처럼 작게 다시 만들었다면 전쟁이고 뭐고 치를 필요가 없었겠지만, 그것도 무슨 철학이라고 방목에 준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고집하다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 꼴이었다.
감나무에, 매화나무에, 석류나무에, 목련에... 그렇게 집에 있는 나무마다에, 딴에는 수목장을 한다고 묻은 토끼가 반 년 동안 무려 스무 마리도 넘었다. 마지막으로 어미들까지 그렇게 묻고 만 뒤에 한 생각이 다시는 토끼 안 기른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내내 방치해 두었던 토끼장에 마루와 그 새끼들을 이주시키고 나니 마루 녀석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오줌을 찔끔거리다가 컹컹, 소리를 내 보기도 하고 혀를 길게 빼서 아주 거칠게 새끼가 쓰러질 정도로 핥아대는가 싶더니 자유를 주어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듯이 앞발을 높이 쳐들고 내게로 와락 달려들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밥을 주러 가서 보니 목띠가 떨어져 있다. 줄을 풀어주면서도 목띠는 그대로 두고 있었던 것인데 놀랍고 슬프게도 녀석이 밤새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그것을 풀어서 물어뜯고 발로 짓밟아 아주 못쓰게 만들어놓았다. 줄에 묶여 있을 때는 목띠를 한 번도 풀지 못했던 녀석이, 줄을 떼어낸 지 하룻만에 어떻게 풀어냈는지 목띠를 이빨로 자근자근 씹어놓았다. 얼마나 웬수 같고 얼마나 보기 싫었으면 저렇게도 씹어놓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랍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