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雪자의 고문'손으로 만질 수 있는 비[雨]?' 상서럽다는 이미지를 갖는 눈의 옛글자.(진태하 교수 書)
진태하
우(雨)자는 눈 뿐 아니라 구름, 안개, 벼락, 번개, 우박 따위 기상(氣象)과 연관되는 거의 모든 글자의 간판으로 쓰인다.
숫자 0을 나타내는 영(零)이나 구할 수(需)와 같이 날씨와 상관없는 글자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零은 원래 비가 내려 (아래로) 떨어진다는 뜻에서, 需는 수염 기른 무당(巫堂)의 모습[而]과 합쳐져 (기우제 따위로 비를) 기다려 구한다는 뜻으로 인신(引伸)된 글자다. 雨자를 대하면 일단 날씨를 연상해도 된다.
전문(篆文)의 설(雪)자는 '비'라는 뜻을 나타내는 형부(形符) 즉 뜻 요소 글자 우(雨)와 소리 요소 글자 즉 성부(聲符)인 혜(彗)가 만나 이룬 형성자(形聲字)라고 풀이한다. 혜(彗)는 청소할 때 쓰는 비, 또는 꼬리별(혜성)을 뜻하는 글자다. 내리면 비로 쓸어내야 한다는 점을 이른 것일까?
눈 내리는 상태의 그림을 글자로 도안(圖案)하면서 기왕 만들어진 무성할 봉(丰)자 모양과 소 축(丑)자 비슷한 모양을 빌려 붙였다는 풀이도 있다. 글자 모두가 그림에서 비롯된 상형자라는 것이다.
나중에 봉(丰)자가 거듭된 부분이 떨어져 나가 현재 쓰이는 해서체 글자가 됐다는 얘기다. 또는 해서체 글씨[雪]만을 풀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비[雨]'라고 풀기도 한다. 축(丑) 모양 글자를 손을 의미하는 우(又)자의 옛 글자로 본 것이다.
제설(諸說)이 분분(紛紛)한 것이 마치 눈이 분분(雰雰)하게 내리는 것 마냥 어지럽다. 그러나 무엇이 맞고, 무엇이 그른지를 따지는 것은 별로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 글자가 거쳐 온 기나 긴 세월의 두터운 더께를 실감하는 것으로 이런 분분한 '이론(理論)'들은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
어른들 중에는 펄펄 눈 내리는 모양 보면서 혀를 차는 모습도 없지 않다. "저 눈이 올 때 이쁘게 내린 것 마냥 갈 때도 곱게만 간다면..."하기도 하고, 길 막힐 것을 저어하는 '실용주의'도 있을 것이다.
자연의 모습에 의미 없는 것이란 없다. 대자연이 연출하는 큰 쇼인 설경(雪景)을 보며 그런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 분이라면, 눈 지그시 감고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던 워즈워드의 시구(詩句)를 떠올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 예지서원 홈페이지(www.yejiseowo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신문의 논설주간으로 한자교육원 예지서원의 원장 직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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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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