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MBC
흔히 <선덕여왕> 하면 미실을 매우 성공적인 캐릭터로 꼽지만, 그것이 사실임에도 우리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덕만도 눈여겨봐야만 한다. 왜냐하면 덕만은 전통적인 주인공의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개 사극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왕은 지극히 요순적인 도덕주의자이다. 그래서 항상 정도를 걸으며 백성이 곧 나라의 근간이요 민심은 천심이라는 교과서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준수한다. <태조 왕건> <대조영> <대왕세종> <이산> <태왕사신기> 등 거의 예외가 없다.
그러나 덕만은 여기서 엇나간다. 덕만은 공주 신분을 되찾기 위해 여론조작과 왜곡, 심지어 날조까지 서슴지 않는다. 아예 한술 더 떠서, 자신과의 약조를 지키지 않은 안강촌 우두머리들을 직접 베어버린다. 앞서 열거한 임금님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난 2007년 대선이 끝난 뒤 인터넷에는 유시민의 '국개론(국가개조론)'을 빗댄 새로운 '국개론(국민 개xx론)'이 횡행했었다. 자기 아파트 값이 오를 기대로 MB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을 향한 일부 누리꾼들의 원망 섞인 표현이었을 것이다.
예전의 드라마에서는 백성들이란 대체로 순박하고 어진 이들로만 묘사되었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백성들은 다르다. 인터넷 표현을 빌자면 '국개'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특히 미실은 적나라하게 '국개'들의 본성을 설파한다. 백성들이 첨성대 앞에서 기도만 할 것이다, 원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백성들은 진실을 두려워한다 등등.
덕만은 그런 미실에 맞서 당당하게 반론하지 못한다. 오히려 미실의 말이 사실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칼을 빼서 '국개'들을 처단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선덕여왕>은 대중과 지도자와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덕만 vs. 노무현] 드라마같은 노, 현실같은 덕만대개 드라마는 현실과 무척 동떨어진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는 <선덕여왕>을 보면서 드라마와 현실이 새로운 양태로 동떨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7개월 전에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보'라는 그의 별명이 말해주듯이 말하자면 요순적인 도덕주의자였다. 그가 집권한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보수언론은 그의 입바른 소리를 질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칙, 도덕, 정의를 강조하면 보수언론은 그런 가치들이 이제는 더 이상 먹고 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쇼'를 싫어해서 후보시절에는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고도 했고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에도 MB처럼 시장골목 돌아다니며 떡볶이를 사먹지도 않았다.
여론조작이나 왜곡? 노무현과는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그런 그가 '국개'를 두들겨 패거나 하는 일도 상상하기 어렵다. 경찰폭력에 시위대가 사망하자 즉각 사과성명을 내고 관련자를 문책했다. 한마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덕여왕> 이전의 전형적인 도덕주의적 왕들의 모습에 가깝다. 그만큼 그는 비현실적인, 드라마 캐릭터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런데 덕만은 그런 노무현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니 보란 듯이 여론조작을 밥 먹듯이 하고 심지어 '국개'를 베어버린다! 덕만은 그렇게 '쇼'를 즐겼다. 현실의 노무현은 오히려 드라마 캐릭터에 가깝고 드라마 속 덕만은 속세의 정치인을 더 닮았다. 누군가는 BBK나 용산참사를 떠올리며 MB와 덕만이 닮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는 미실을 들여다보면 훨씬 더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