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용의『길은 복잡하지 않다』표지
철수와영희
그래서 이 책은 '절대 읽지 말아야 할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갑용이 누구인가? 골리앗의 전사이자 자랑찬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에다 노동자 출신 구청장이 아니었는가. 세상 알만큼 알고, '대화나 타협'도 몸에 익어있어야 할 지천명을 넘긴 이갑용. 왜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팔 이야기를 세상을 향해 한단 말인가. 이갑용은 "'유연한 좌파'나 '부드러운 직선'보다, 그냥 '좌파'와 '직선'인 삶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이갑용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치부를 고스란히 세상에 말한다. 국민파니 중앙파니 '정파'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며 '정파'의 패악을 솔직하게 고발한다. 진보세력이 존경해야 할 숱한 지도자들을 실명까지 들먹이며 부패를 까발린다. 좌도 우도 가리지 않는다. 때론 듣기 싫을 정도로 까칠하고 때론 이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 싶어 욕이 나올 정도다.
허나 어쩌랴! 이 부끄럽고 아픈 흔적이 모두 사실인데. 그리고 '그때'가 아닌 '지금'인데.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사라질 부스럼이 아니라 더욱 심하게 곪아갈 상처인데. '절대 읽지 말아야 할' 이야기지만 꼭 한번은 듣고 반성하고 반드시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안 될 오늘의 이야기다.
글은 허세가 아니다. 글은 상처의 치유이다. 이갑용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몸에 섞고 곪아가는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또한 한국 민주노동운동의 생채기도 치유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읽지 말아야 할 이 책을 읽고 밤새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기도 하고, 중간에 책을 찢고 싶을 정도로 아프기도 했다.
책 구절구절마다 이갑용이 보여 힘들었다. 책에서 반성을 하고, 때론 비판을 하고, 때론 대안이라고 무엇인가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개인 이갑용의 얼굴이 떠올라 괴로웠다. 그리고 책장을 덮은 지 사흘이 지났다. 차츰 <길은 복잡하지 않다>에서 이갑용의 얼굴이 지워졌다. 이갑용이 왜, 오늘, <길은 복잡하지 않다>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지 이해가 되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었기에 이갑용이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였지만, 민주노총 위원장이었기에 이갑용이 할 수밖에 없는 고뇌가 가슴에 다가왔다.
하지만 바란다. 이 책을 많은 이가 읽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 읽더라도 이갑용이 골리앗 전사였고, 현대중공업 위원장이었던 시절까지만 읽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바란다. 많은 이는 아니더라도 꼭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노동운동을 한다고 한다면, 자신이 진보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진보정치를 한다고 여긴다면, 꼭 이 책을 끝까지 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갑용을 먼저 욕하시라. 그 다음에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시라. 이갑용의 말이 옳든 틀렸든 가슴에 어떤 울림이 있을 것이다. 그 양심의 울림에 귀 기울이고, 그 파장으로 양심껏 일하시라.
이갑용처럼 생각하고, 이갑용처럼 판단하고, 이갑용처럼 활동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노동운동가로서, 내가 진보세력으로서, 떳떳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활동하면 그만이다. 이갑용이 바라는 바도 '자신처럼'은 아닐 것이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하는 길을 찾자는 제안일 뿐이다. '금기'를 먼저 깨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가 아니었던가. '외로운', 그래서 아직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갑용이었기에 그 '금기'를 자살특공대처럼 넘은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외롭고 싶지도 않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다시 시작하고 싶다. - 프롤로그 가운데서마지막으로 이갑용이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맺는다. 다만 책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지 않은 게 아쉽다. 아쉽지만 할 수 없다. 부분을 읽고 전체를 진단할까 두려워서다. 제대로, 끝까지 책을 읽지도 않고, 다 아는 것처럼 이러니저러니 하는 '불량 독자'들의 세 치 혀로 또 다른 '말의 논쟁'을 최소한 이 책에서만큼은 없기를 바라는 소박한 바람 때문이다.